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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만의 미디어 비평] 속내 아리송한 'PD 집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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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만의 미디어 비평] 속내 아리송한 'PD 집필제'

입력
2009.06.24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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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실시하겠다는 'PD 집필제'로 한동안 방송계가 시끄러웠다. KBS가 내세우는 표면상의 이유는 'PD의 역량 강화'라고 하는데 방송작가들은 전문 직능을 무시한 처사라며 거세게 반발하였다.

오래 전 일이다. 1980년대초 필자도 어느 방송사에서 잠깐 작가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아마 작가제도가 도입된 초창기가 아닌가 싶다. 이때의 작가는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원고만 쓰면 됐다. 작가의 역할은 일부 프로그램에 매우 제한적으로 전문화되어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작가들의 역할 범위가 매우 넓어졌다.

또 방송에 나가는 거의 모든 프로그램은 작가의 손을 거치게 된다. 줄거리를 구성하고 원고를 쓸 뿐만 아니라 출연자 섭외도 한다. 아주 드문 경우이겠지만 스튜디오에서 조연출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PD의 역할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우리나라 방송 제작환경 및 여건의 변화를 곱씹어보면 이렇듯 작가들의 비중이 커지는 것에 대해 일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제작과정이 더 정교해지고 복잡해짐에 따라 PD들이 할 일이 그만큼 많아졌기 때문에 작가들에의 의존도가 높아진 것은 틀림이 없다.

특히 프로그램에 필요한 정보를 발굴하고 취사선택하는 데 PD 개인의 역량으로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작가도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며 많은 보조 작가들과 같이 팀을 이루어 활동하는 것이 추세이다.

그런데 PD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PD집필제를 도입한다는 발표를 했다. 어딘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왜 뜬금없이 'PD집필제'가 거론되는 것일까? PD들의 역량을 키우고 예산 절감을 위한 차원에서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을까?

오비이락이라고 해야 할까? 광우병을 다룬 MBC 'PD수첩'에서 작가들이 문제가 있다는 검찰의 발표가 있던 차에 KBS가 PD집필제를 실시하겠다고 했으니 그 순수성이 더욱 의심스럽다. 아무리 경쟁 관계에 있다고 하지만 타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때 생색을 내며 반사 이익을 얻으려는 것 같아 씁쓸했다.

기왕에 PD집필제를 실시하려면 점진적으로 해야 한다. 우선 필요한 것은 PD들이 작가들을 대신하여 글을 쓸 만한 역량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PD들이 입사를 하면 한동안 원고를 집필하는 훈련을 쌓도록 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그간 오랫동안 PD들이 글을 써오지 않았던 관행을 고려할 때 갑작스런 PD집필제의 실시는 결국 프로그램의 질적 하락을 초래하게 될 것이 뻔하다. 그리고 그 피해는 시청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된다.

PD집필제의 실시는 좀더 신중해야 한다. 프로그램 성격이나 제작 여건에 따라 PD가 직접 집필할 수도 있고 또 작가가 절대적으로 필요할 수도 있다. 방송작가를 없애려면 그에 상응하는 많은 PD들을 투입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즈음 KBS의 간판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여겨지는 '소비자 고발'도 작가들이 없었다면 제작이 가능했을까? 자문해본다. 어쨌든 KBS가 PD집필제를 당장은 실시하지 않겠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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