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손으로 소 3마리를 잡았지. 한 마리는 당시 정치적인 입김에 의해 쇼가 가미되는 아이러니도 있었지만…"
'당수 귀신' 천규덕(77)을 기억하시나요. 1960~70년대 '박치기 왕' 김일, '백드롭의 명수' 장영철과 함께 국민스포츠였던 프로레슬링 1세대 천규덕. 검은 타이저를 입고 맨손으로 호랑이를 잡을 듯한 강렬한 눈빛과 함께 돌덩이 무게 같은 당수 몇 방으로 상대를 쓰러트려 국민들을 열광시켰던 주인공이다.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프로레슬링 동우회에서 천규덕씨를 만났다. 얼굴에 주름은 늘었지만 여든에 가까운 나이에도 젊은 사람 못지 않은 근육 등은 나이를 거꾸로 먹는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건강해 보였다.
1세대 프로레슬러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국내 프로레슬링의 산증인인 그는 은퇴 후 지난 98년 프로레슬링 동우회를 결성하고 2002년 신한국 프로레슬링 협회 원로고문을 역임했다. 지금도 일주일에 두 세 차례 동우회 사무실에 들러 프로 레슬링 발전을 고민하고 있다.
■ 맨손으로 황소 3마리를 잡다
천씨는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당수(지금의 태권도) 공인 3단의 유단자였다. 훗날 '당수귀신'의 밑바탕이었던 셈이다. 부산에서 공군 하사관으로 근무하던 그는 1963년 우연찮은 기회에 프로 레슬러로 변신했다. 그리고 한참 뒤 그는 국내 프로레슬링의 중흥을 위해 특별 이벤트를 생각했다.
그 유명한 장충체육관에서 맨손으로 황소 때려 잡기다. 이를 위해 그는 사전에 서울 마장동 우시장에 가서 두 차례 소 때려 잡는 예행연습도 거쳤다. 당수 단 두 방에 몸집 큰 소가 숨을 거두고 쓰러졌다. 주위에서 지켜보던 사람들도 놀랐다. "아, 이거 되겠다 싶어 장충체육관에서 레슬링대회 오픈행사로 천규덕이 맨손으로 소를 잡는다는 광고를 대대적으로 냈지."
그러나 생각지도 않은 상황이 발생했다. 시합 이틀전에 중앙정보부에서 호출이 온 것이다. "왜 하필 소를 잡냐. 황소가 공화당의 상징인 줄 모르나. 정부와 여당을 상대로 한 번 해보자는 거냐"는 말에 천씨는 깜짝 놀랐다.
"그런 건 아니고…"라며 우물거리자 중정 관계자는 "이미 광고까지 했는데 약속을 지키긴 하되 소를 단 번에 때려 잡지 말고 최대한 여러 번 쳐서 '과연 황소구나' 하는 느낌을 주도록 하라"고 타협안을 내놓았다.
천씨는 "단 방에도 보낼 수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15차례나 때려 황소를 눕힌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었지"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그는 당수 근력을 키우기 위해 틈 나는 대로 송판이며 벽돌을 깨고 심지어 건물벽을 치는 피나는 연습을 했다고 밝혔다.
■ 천규덕, 역도산, 김일의 삼각관계
부산에서 군 복무시절 야간에 태권도 도장 사범으로 활동하던 천씨는 그곳에서 레슬링 연습을 하던 장영철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어느날 장영철과 함께 전포동의 밤길을 걷다가 전파상 앞에 사람들이 몰려 TV를 시청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일본방송사에서 중계하는 역도산과 미국선수의 경기 모습이었다. 그는 "저거 되겠다. 우리나라에서도 둘이서 손잡고 해보자고 한 게 국내 프로레슬링의 본격적인 출발이다"고 밝혔다.
무대를 서울로 옮겨 일본 선수와 경기를 했는데 관중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대박을 터트렸다. 장충체육관의 9,900석 자리가 꽉 찼고 관중들은 "일본 선수 죽여라. 죽여"라며 열광했다.
레슬링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자 정치적으로 혼란기를 맞고 있던 정부는 국면 전환용으로 프로레슬링을 이용했다. 그는 "정부가 한 달에 한 번씩 일본 선수와 대결 하도록 지시했고 직접 주선까지 해주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1963년 후반기 일본에 있던 역도산 씨가 한국 레슬링 시장 점검차 귀국했다. 소식을 들은 국내 프로레슬러들이 그의 숙소인 조선호텔 앞으로 달려가 두 줄로 도열했다. "당시 군복을 입고 나와 악수를 하던 역도산 씨는 내 손을 보고 나중에 일본으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일본으로 돌아간 역도산씨가 피살되고 말았지. 그래서 일본 진출 꿈도 사라졌고."
이 때쯤 김일이 귀국을 하면서 프로레슬링이 전성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둘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에서 인기를 끌던 김일씨가 귀국해 프로 레슬링이 최대 인기를 구가하게 됐지만 국내에서 터전을 잡아놓은 '국내파'들을 소외시한 채 혼자 스타 대접을 받으면서 알력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때 김일 씨가 욕심내지 않고 다른 선수들을 조금이라도 보듬었으면 좋았을 텐데…"
천규덕과 김일은 선수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맞대결을 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김일의 박치기와 내 당수가 제대로 붙어 보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회상했다.
■ 프로레슬링은 쇼?
그는 "장열철?프로 레슬링은 쇼라고 나중에 폭로해 파문이 있었지만 엄격히 말해 완전한 쇼는 아니다"고 말했다. 사전 각본이 있거나 하는 등의 짜고 치는 고스톱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만, 상대방이 기술을 걸면 받아주고 급소를 피해 때리는 등 상대를 다치지 않게 할 뿐이다. 그게 기술이며 레슬링 룰이라는 것.
프로레슬링의 인기 만큼 돈도 많이 벌었을까. "돈 이야기 하면 창피한데… 한번 매치하면 톱스타의 경우 30~40만원 정도 받았지. 회사원의 봉급 수준이랄까. 특히 복싱은 챔피언 한 사람이 갖지만 레슬링은 10명 정도가 나눠 먹으니 프로이긴 하지만 돈을 버는 직업은 아니었지."
건강관리를 위해 요즘도 팔 굽혀 펴기 등 하루 5시간씩 운동을 하고 있다는 천씨는 "우리 같은 못난 선배들이 후배양성을 못해 요즘 국내에서 프로레슬링이 관심을 받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다"면서 "지금부터라도 프로레슬링 발전을 위해 도움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정동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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