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호흡기를 제거하겠습니다."
23일 오전 10시21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본관 1508호실. 내과계 중환자실 담당인 박무석 교수가 1년4개월 동안 주치의를 맡아 돌봤던 김모(77ㆍ여)씨의 입에서 인공호흡기를 뗐다. 얇은 이불을 목까지 덮은 채 뜬 눈으로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있던 '식물인간' 김씨는 그 순간 스스로의 힘으로 첫숨을 내쉬었다. 3분 뒤 인공호흡기 전원이 꺼졌다. 김씨의 호흡수가 줄고, 혈압이 최고 140㎜Hg까지 치솟았다.
아들과 세 사위, 임종 예배를 주관했던 홍경표 목사, 가족 대리인인 신현호ㆍ백경희 변호사, 연명치료 중단 소송 1심을 맡았던 서울서부지법 김천수ㆍ최윤정 판사가 박 교수 등 의료진 4명과 함께 자리를 지켰다. 호흡기가 제거되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어 병실 밖으로 나왔던 세 딸과 며느리, 두 손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국내 첫 존엄사 시행의 순간이었다. 지난해 2월18일 폐암 조직검사를 받던 중 과다 출혈로 인한 뇌손상으로 줄곧 이 병원 본관 9층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던 김씨는 연명치료 장치 제거를 위해 이날 오전 8시50분쯤 같은 건물 15층 1인실(21.4㎡)로 옮겨졌다. 호흡기 제거를 허용한 대법원 판결(5월21일)이 내려진 지 한달 남짓 만이다. 김씨가 20년 이상 다니던 서울 용산구 보광동교회 담임목사의 집전으로 9시50분부터 15분 가량 임종 예배를 본 가족들은 마지막으로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로 시작하는 '어머니 마음'을 나지막이 합창했다. 한 딸은 할머니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엄마, 너무 힘들어 하지 말고… 천국에 가서 아버지도 만나고…"라며 눈물의 인사를 건넸다.
호흡 곤란으로 이르면 30분 내에 숨을 거둘 것이란 예측과 달리, 오전 11시쯤부터 김씨의 상태는 호전됐다. 스스로 호흡을 하면서 중환자실에 있을 때의 상태로 돌아왔다. 이날 밤 10시30분 현재 혈압은 110/70㎜Hg로 회복됐고, 분당 맥박수(정상 85회 내외)는 90회를 기록하고 있다. 혈액 속 산소 포함 정도를 뜻하는 산소포화도(정상 96~100%)도 96%로 괜찮다. 호흡 깊이가 일반인보다 얕지만 호흡수는 분당 18~21회로 비슷하다.
병원 측은 "합병증 등 예후를 속단하긴 이르다"면서 환자가 장기간 생존할 가능성도 조심스레 언급했다. 박창석 연세의료원장은 "환자가 계속 안정적으로 자발호흡을 한다면 현재 상태가 지속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가족측은 "무의미한 연명 기계를 뗀 것일 뿐 다른 치료는 그대로 진행된다. (김씨를) 퇴원시킬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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