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건전성 악화에 대한 정부의 시름이 상당히 깊다. 겉으로는 꽤 태연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시커멓게 타들어 간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재정 악화 추세가 생각보다 훨씬 좋지 않다"며 "재정지출을 축소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만큼 적극적인 증세 방안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현 정부가 출범 이후 줄곧 '감세 예찬론'을 펴온 것을 감안하면 이런 태도의 변화는 납득하기 쉽지 않다. 남들이 세수 걱정을 하며 반대할 때는 "끄덕 없다"며 아랑곳 않던 정부가 이제 와서 마치 돌발 변수가 터진 듯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다. 그래 놓고는 그 모든 부담을 서민과 중소기업들에게 슬그머니 전가하려는 모양새다. 대다수 전문가들이 "증세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면서도, "증세의 방향이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감세의 족쇄
현 정부의 '감세 사랑'은 열렬했다. 정부 당국자들은 그동안 우리 경제가 성장하지 못했던 것은 세율이 높았기 때문이고, 대폭적인 감세만 하면 금방이라도 경제가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문'을 넣었다. '세금 감면 →민간 세부담 축소 →투자 확대 및 일자리 창출 →고성장 →세수 증대'의 선순환 구조가 정착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완전히 틀린 주장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재정 여력'이었다. 재정은 한번 악화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기 마련. 특히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재정 지출을 대폭 늘려야 하는 상황이었고, 급속한 고령화에 대비해 가급적 재정을 비축해둬야 하는 한국의 특수성도 무시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적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우리나라 재정은 선진국에 비해 훨씬 양호하다" "세계잉여금(쓰고 남은 세금)이 충분하다" 등의 안일한 태도로 일관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감세의 혜택이 국민들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못하고 대기업과 고소득층에게 집중됐다는 점. 법인세와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는 물론이고 소득세 인하조차도 가장 많은 혜택을 입는 것은 고소득층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부는 단호했다. "감세의 혜택은 세금을 많이 내는 소수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경고등 켜진 재정
정부가 예상하는 올해 관리대상수지의 적자 규모는 51조원 수준. 이미 1분기에만 22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했다. 재정 적자 확대는 곧 국가 채무 급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적자를 빚으로 메우는 수밖에 없는 탓. 올해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규모는 366조원으로 추정된다. 작년 국가채무가 308조원 수준이니까 1년 새 무려 60조원 가까이 불어나는 셈이다.
국내총생산(GDP)에서 국가채무가 차지하는 비율도 작년 30.1%에서 올해는 35.6%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비율이 70%를 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에 비해서는 여전히 양호하다고 하지만, 불과 7년 전 20%에도 채 못 미치던 것과 비교하면 무서운 상승 속도다.
더구나 내년부터는 걷히는 세금이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가뜩이나 법인세, 소득세 등 주요 세목의 세율을 대폭 낮춰 놓은데다, 올해 경기 부진의 영향이 내년 세수에 고스란히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증세의 방향을 바꿔라
이제 증세는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문제는 증세의 방향이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방향은 잘못됐다는 지적이 많다. 할당관세 품목을 줄이고 비과세ㆍ감면 제도를 축소하는 등 서민과 중소기업을 타깃으로 해서는 세수 증대의 효과도 미미할 뿐 아니라 계층간 분열만 더욱 커질 것이란 지적이다.
이미 실시한 감세를 되돌리지는 못하더라도 내년으로 예정된 법인세와 소득세 세율 추가 인하를 유보하는 등의 조치가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다. 전영준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당분간 재정 지출을 줄이기 쉽지 않은 것을 고려하면 감세 조치는 당분간 미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고,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영구적으로 매년 줄어드는 감세 중 우선 법인세 인하를 중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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