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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부자감세, 서민증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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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부자감세, 서민증세

입력
2009.06.23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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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미국 연수시절 초기에 한국 교민들을 만날 때마다 놀란 것이 많은 이들이 그림 같은 집과 벤츠나 렉서스 등 고급차를 여러대 갖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50만~100만달러의 고급 주택에, 한국에서는 재산규모 상위 1% 안에 들어가는 사람들이나 탈 수 있는 고급차를 이들의 학생 자녀까지 타고 다니는 것이 부러울 따름이었다.

첫 인상과는 달리 이는 결국 부시 정부의 감세 정책에 따른 일종의 과소비의 결과로, 미국이 금융위기를 맞게 된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판명됐다.

집을 사려면 은행에서 돈을 빌린 뒤 이자와 원금을 갚아야 한다. 현지 사람들은 이를 payment(분할납부금)라고 했다. 당시에는 대개 집값의 10% 정도만 현금으로 확보하면, 나머지는 금융기관에서 쉽사리 대출을 해 주는 위험한 구조였다.

특히 자영업자들은 이 주택 분할납부금과 차량구입 금액 등에 대해서 세금공제를 받기 때문에 세금부담을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다. 일종의 비용처리가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집값이 계속 오를 때라 채무에 대한 리스크 관리는 뒷전이었다.

따라서 슈퍼마켓 세탁소 식당 등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은 세금을 내느니 좋은 주택과 차량을 구입해 풍요를 즐겼고, 덕분에 건설업과 자동차업계는 매출이 폭발, 호황이 계속됐다. 하지만 감세정책으로 발생한 주택거품이 일시에 꺼지면서 미국은 금융위기를 맞았고, 엄청난 재정적자라는 후유증을 앓게 됐다. 그러니까 감세->소비급증->거품 호황->금융위기->재정적자급증의 순으로 사태가 진행된 것이다.

부시 정부의 감세정책 후유증을 교민 사례를 들어 지적한 것은 집권 초기부터 시끄러웠던 정부의 감세정책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정부가 부유층에 대한 감세를 한 반면, 서민층에게는 증세를 하려한다는 것이 문제다.

소비증대라는 검증되지 않은 '낙수효과'를 노린 감세정책으로 재정적자가 심각해지자, 서민들에게 세금을 더 걷으려 하는 '가렴주구(苛斂誅求)'형 세금정책이 지금 논란의 핵심이다.

심지어 집권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정부의 감세정책에 대해 변화를 요구하는 것은 그만큼 이 문제가 국민들에게 민감하다는 반증이다. 소장파 의원들의 요구는 종합부동산세와 법인세 및 소득세 감면, 다주택자의 양도세 중과 한시적 폐지 등 기존 감세정책 기조를 변화시키라는 의미일 것이다.

경제위기에 처한 주변국을 둘러봐도 우리 정부의 감세정책은 대세를 거스른다. 미국 오바마 정부는 내년부터 부유층에 대한 감세혜택을 없애고 기업 등에 대한 세금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또 심각한 경제난에 처한 영국도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율을 현행 45%에서 50%로 인상하겠다는 방안을 밝혔다. 덕분에 고든 브라운 총리는 부유층에게 '공산주의자' 취급을 받기도 했다. 독일은 소득세 최고세율을 현행 45%에서 47.5%로 올리고 적용범위도 넓혔다. 일본과 중국도 유사한 정책을 계획하고 있다.

세금은 국가 단위에서 보면 일종의 나눔 행위로 볼 수 있다. 많이 번 사람이 많이 내는 것이 조세형평에도 맞다. 덕분에 여유 있는 사람과 어려운 사람들이 세금을 매개로 공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세제 운영을 잘못하면 계층 갈등을 유발, 빈부계층의 공존이 위태로워진다. 이제라도 조세 철학과 정책을 진지하게 재검토하라는 얘기다.

조재우 경제부차장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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