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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이상봉의 Fashion & Passion] <3> 새가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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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이상봉의 Fashion & Passion] <3> 새가 되고 싶었다

입력
2009.06.23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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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업실은 조선 제9대 왕 성종대왕이 잠들어 있는 선릉을 앞에 두고 있다. 늦은 작업 탓에 길 건너에 마련한 숙소에서 잠을 청하면 선릉에서 서식하는 까치와 참새들의 노랫소리로 눈을 뜨곤 한다. 사무실에 나가면 맨 먼저 반기는 것 또한 작업실에서 기르는 앵무새들이다. 이들의 반가운 인사와 함께 나의 하루일과는 시작된다.

나는 새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 1991년 연말 하얏트 호텔에서 있었던 피날레 쇼에서 새를 날린 것이 첫 인연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때는 가슴과 포켓에 새장을 만들어 모델들이 무대에서 새를 날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나는 이 쇼를 통해 처음으로 퍼포먼스를 패션쇼에 접목했다. 이후 새를 날리는 패션 퍼포먼스는 이상봉의 트레이드마크처럼 인식됐다.

당시 재미있었던 일은 모델들이 새한테 손등이 물려 피가 나면서도 웃으면서 우아하게 새를 날릴 수밖에 없었던 에피소드가 있다. 그러나 패션쇼장을 날아다니는 새가 관객들에겐 아름답게 보였겠지만 '혹시 무대 위를 날아다니다 조명이나 천장에 부딪쳐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에 쇼가 끝날 때 까지 긴장을 놓지 못했다.

무사히 쇼를 끝나고 무대 뒤로 날아온 새들과 당시 작업실인 청담동에서 동거가 시작되었다. 95년 호암아트홀에서 열렸던 중앙디자인 그룹 패션쇼에서 상징적인 의미로 새장처럼 만든 드레스에서 새를 꺼내 날리는 퍼포먼스를 했다.

모자를 새장으로 만들어 쓰고 나오는 등 새는 한동안 나의 작업에서 자유를 상징하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새들이 시끄럽게 지저귀는 소리에 작업을 방해 받을 정도로 신경이 쓰이자 나는 마침 사무실을 방문한 기자에게 새들을 '선물'해 버렸다.

몇 년 후 어느 날 청계천을 걷다가 새를 다시 한 번 길러봐야겠다는 생각에 유난히 어린 앵무새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는 본격적인 새와의 인연이 시작된 계기가 되었다.

앵무새를 사무실에 데리고 온 후 이름을 '민들레'라고 지었다. 민들레라는 이름은 내가 가끔 흥얼거렸던 조용필씨 노래 중에서 '일편단심 민들레야'라는 구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컬렉션 때문에 밤늦도록 사무실에 혼자 있으면서 느끼는 외로움과 고독감을 민들레가 달래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끔 새장에 있던 민들레가 내 책상 위에 올라와 있곤 했다. 처음에는 '누가 문을 열어주었나' 하고 생각 했는데 그런 일이 반복되자 민들레가 혼자서 부리로 문을 열고 나온다는 것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우리는 머리 나쁜 사람을 '조두'(鳥頭)라고 놀리지만 민들레는 단순히 애완동물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일 만큼 영리했다.

이렇게 민들레는 내 바람대로 밤마다 나를 위로해 주었고 컬렉션 때문에 혼자 밤을 새우고 있을 때면 바지를 타고 올라와 무릎에 앉기도 하고 책상 위에 올라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안아주길 재촉했다. 아직도 그때 민들레의 눈빛과 아름다운 모습을 을 수가 없다.

이렇게 민들레는 2년이 넘게 사무실에서 나와 함께 생활했다. 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장한 민들레는 나에게 다가와 어깨에 앉기도 하고 무릎 위로 올라와 몸을 부비기도 하면서 애정을 표시했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내가 민들레를 날려 보내면 사무실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내 어깨에 앉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토요일,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뒤 회사에 혼자 남은 나는 여느 때처럼 민들레를 데리고 점심을 먹으러 사무실을 나섰다. 그날은 이상하게도 청담동 사무실 앞 골목이 차로 꽉 막혀 한 치도 움직이지 못했다.

짜증난 운전자들이 커다란 경적을 울리자 놀란 민들레는 가장 높은 전봇대로 날아올랐다. 나는 점심도 거른 채 그 아래서 민들레를 부르며 2시간 가까이 기다렸다. 이윽고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민들레는 주택 옆에 있는 낮은 전봇대로 날아 자리를 옮겼다.

그때 나는 담을 타고 올라가 민들레를 안고 내려오는 도중 발을 헛디뎌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허리를 크게 다친 나는 거의 1주일간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퇴원한 후에도 민들레와 나는 여전히 같이 지냈다. 언젠가 잡지에 나가는 사진을 찍기 위해 사무실 근처에 있는 포토그래퍼 김용호씨 스튜디오로 민들레를 데리고 갔다가 그의 제안으로 민들레와 함께 촬영을 하기도 했다.

머리에 앉은 민들레와 함께 찍은 사진은 나의 첫 파리 컬렉션의 초대장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이렇게 민들레와 함께하는 재미에 푹 빠진 나는 내 사무실 옆에 있는 사진작가 김중만씨에게도 키워보라며 새를 사서 선물하기도 했다.

그 뒤로 거의 보름일정으로 파리에서 열리는 컬렉션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을 떠나면서 민들레를 집에 홀로 남겨두었다. 한 번도 떨어져 본적이 없었던 민들레는 기다림에 지쳐서인지 파리 컬렉션을 마치고 돌아 왔을 때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외로움이 극에 달한 나머지 먹지도 않고 스스로 굶어죽고 말았다. 정들었던 민들레를 집 뒤 정원에 묻으며 내 가슴속에도 함께 묻어 두었다.

난 그 뒤로 많은 새를 기르게 되었지만 내가 새가 되고 민들레가 친구가 되었던 그런 인연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지금도 가끔씩 '일편단심 민들레'를 흥얼거리며 그때를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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