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 어느 산(山)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 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 년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 알베르-칸(1860~1940)이라는 프랑스의 대부호는 재산을 문화사업을 하는 데 쓴 사람이다. 그는 20세기 초에 사진사들을 전 세계로 보냈다. 그 당시 새로 개발된 오토크롬 기술로 무장했던 캉의 사진사들은 세계 구석구석을 헤매며 사람들과 자연을 컬러로 찍었다.
그 사진들에 나오는 사람들은 이미 이 세계에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전통의상과 머리스타일을 하고 있다. 이 세계가 서구형으로 평준화되기 이전, 이 세계가 어떤 같은 시스템 안으로 들어오기 이전의 상태, 각각 다른 옷, 다른 집, 다른 삶의 표정을 하고 그들은 카메라 앞에 서 있었다.
백석 선생의 시를 읽으면 바로 그런 사람들이 떠오른다. 위의 시에 나오는 '가지취' 냄새가 나는 여승,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가버린 어린 딸, 옥수수를 파는 평안도 어느 산의 여인. 만일 캉의 사진사들이 그때 조선으로 왔더라면 이런 모습을 담았으리, 그리고 백석 선생처럼 '불경처럼 서러워'졌을지도 모르리라.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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