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왕' 빌 그로스(65ㆍ사진) 핌코 최고투자책임자(CIO)가 미국 금융위기 해결사로 부상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21일 보도했다. 핌코는 1,580억달러(약 200조원) 규모의 세계 최대 뮤추얼펀드 '토털 리턴 펀드' 등을 운용하면서 세계 채권시장을 주무르는 큰 손이다.
그로스는 2005년 10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를 사전 경고하며 투자금을 거둬드린 탁월한 감각으로 명성을 얻은 인물이다. 금융위기가 뒤흔든 지난해에도 토털 리턴 펀드의 수익률을 4.3%로 유지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지난해 가을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메릴릴치 인수 과정 등에서 그의 통찰력을 빌린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특히 그로스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부실채권 정리정책의 핵심인 '공공ㆍ민간 투자 프로그램'(PPIP)을 적극 옹호하면서 현 정부 내 영향력이 더욱 커졌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학 교수나, 금융위기를 경고해 온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등은 "PPIP는 국민 혈세로 금융회사만 배 불리는 정책"이라고 맹비난했다.
하지만 그로스는 "PPIP야말로 은행, 납세자, 부실채권 투자자 3자 모두가 윈-윈-윈 할 수 있는 정책"이라며 크루그먼 등의 주장을 대안 없는 비관론으로 몰아세웠다. 게다가 토털 리턴 펀드 투자액의 61%를 모기지 채권에 투자, 정부의 부담을 덜어줬다.
그로스는 정부 협조에 대한 대가로 고수익을 바라고 있다. 정부와 민간자본이 반반 씩 투자해 부실채권을 헐값에 인수하는 PPIP를 통해 핌코는 투자액의 25%에 달하는 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PPIP와 핌코의 유착관계를 "도둑질 면허를 주는 행위"라고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정부로서는 다른 대안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빌 그로스는 대학 졸업 후 단돈 200달러를 들고 라스베이거스로 가 4개월 만에 1만달러로 불려 대학원 학비를 마련했을 정도로 탁월한 블랙잭 실력을 갖췄다. 당시 익힌 도박감각이 현재 투자전략의 기본이라고 말할 정도다. 또 주로 요가를 하면서 투자 영감을 얻는다는 괴짜다. TV에 출연하거나 사업상 중요 회의에 값비싼 에르메스 넥타이를 단정하게 매는 대신 목에 스카프처럼 두르고 나타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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