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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나는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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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나는 모르겠어

입력
2009.06.23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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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쓸 때, 모르는 게 너무 많고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많으며 사람마다 무수히 다른 마음의 결을 짐작도 못하겠다는 생각 때문에 글을 쓸 힘을 잃고 자신을 잃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폴란드 출신의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선집을 들여다본다.

쉼보르스카의 시들, 그러니까 끝과 함께 있는 시작, 죽음과 함께 있는 생, 사랑과 함께 있는 파탄에 대해 말하는 역설적인 시들도 물론 아름답지만, 그녀가 199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을 당시의 연설문은 읽을 때마다 글 쓰는 일에 괜한 엄살을 부리는 내게 좋은 약이 되곤 한다.

쉼보르스카는 시인의 영감이 무엇인지를 묻는 일반적인 질문에 대해, "이미 해결된 문제 속에서 또다시 새로운 의문과 궁금증이 생겨나게 되고, 그 속에서 또 다른 영감이 싹트게 되는 거지요. 영감, 그게 무엇인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나는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가운데 새로운 영감이 솟아난다는 사실입니다."라고 대답한다.

쉼보르스카에 의하면 시인들은 자신들을 향해 끊임없이 '나는 모르겠어'를 되풀이 하는 사람이다. 또한 자신의 모든 작품들을 통해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 위안을 받는 것은, 세상에 대해 잘 모르고 사람마다 모양새 다른 마음을 결코 알 수 없다고 말하는 일이 세상에 대해 잘 안다고 하거나 사람의 마음이야 뻔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것들에 대해 잘 모르니, 그것에 대한 답을 찾는 방법으로 소설을 써나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모르는 세계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일을 시인이나 소설가만 하는 건 아니다. 쉼보르스카가 든 예를 참고하자면, 아이작 뉴턴도 '나는 모르겠어'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떨어지는 사과를 보더라도 고작 주워서 먹는 일밖에 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구의 삶이든, '나는 모르겠어'를 되풀이하며 해답을 찾아나가는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해답은 자신의 일에 몰두해서 찾기도 하고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 찾기도 하고, 여러 권의 책을 읽으면서 찾기도 한다. 어떤 문제는 끝끝내 해답을 얻지 못하므로 계속해서 답을 찾기 위해 애쓸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해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해답을 찾으려는 과정이므로 어떤 시행착오든 괜찮다.

요즘은 '나는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득세다. 이미 다 알고 있으므로 더 궁리할 필요도 연구할 필요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다. 쉼보르스카에 의하면 '살인자들, 독재자들, 광신자들, 몇 가지 구호를 목이 터져라 외치며 권력을 투쟁하기 위해 싸우는 정치가들'이 그러하다.

그들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또 열광적인 아이디어로 그 일을 수행하고 있지만, 그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들은 결코 '모른다'는 말을 하지 않고, 자신들이 알고 있는 유일한 것, 오로지 그 하나만으로 영원히 만족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사실 소통의 부재나 단절을 호소하고 이를 극복하자는 건 새로운 해결책이 아니다. 그 주제는 대중문화에서 상투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그럼에도 요즘 들어 더 절실해진 건, 말하는 입은 있어도 듣는 귀가 없는 사람이 너무 많아졌다는 생각이 드는 탓이다. '나는 모르겠어'라고 생각해야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하고 책을 보고 연구를 하게 된다. 세상을 바꿀 '영감'은 그렇게 말하는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편혜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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