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기자들과 만난 백용호 국세청장 내정자의 첫 마디는 "국세청은 권력기관이 아니다"였다. 그냥 행정부처의 하나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언뜻 보면 원론적 수사(修辭)같지만, 백 내정자는 이 언급을 통해 자신이 추진할 국세청 쇄신의 최종목표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얘기했다. 국세청을 권력기관 아닌 행정기관으로, 사정기관 아닌 세정기관으로 다시 자리매김하겠다는 뜻이다.
'백용호식 쇄신'은 인사와 조직,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될 전망. 이중에서 예민한 쪽은 역시 인사인데, 대대적 '물갈이 인사' 여부가 최대 관심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국세청 안팎의 관측이 지금도 팽팽하게 엇갈린다.
대규모 인사교체를 예상하는 쪽에선 '인적청산 없이 쇄신도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임명권자가 5개월의 장고(長考) 끝에 '백용호 카드'를 뽑은 것 자체가 기존 국세청 인력에 대한 불신의 표시인 만큼, 수뇌부 교체는 피하기 어렵다는 것. 때마침 지방청장 2명을 포함해 간부급 18명이 대거 명예퇴직을 신청함에 따라, 백 내정자 취임 이후 인사 폭은 확실히 커질 전망이다.
반면 전면적 수뇌부교체는 없을 것이란 예상도 있다. 국세청은 외부인사가 수장으로 영입된 만큼, 후배기수의 검찰총장 내정으로 10여명 이상의 검사장이 집단 하차하게 될 검찰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상황이란 것이다. 그는 '조직장악'이란 말에 거부감을 표시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터'가 세기로 유명한 국세청 기존 틀을 완전히 흔들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있다.
수뇌부 인사의 초점은 결국 허병익 차장과 이현동 서울청장 2명으로 압축된다. 특히 5개월간 청장 대행을 맡았고 청장 후보로도 강력히 거론됐던 허 차장의 거취가 관심거리다. 백용호 내정자가 두 사람을 모두 붙잡을지, 아니면 1명만을 선택할지(이 경우 이현동 서울청장이 남을 공산이 커 보인다)가 향후 인사의 하이라이트가 될 전망이다.
조직개편은 그 동안 청와대 주도로 추진해온 국세행정 선진화 방안을 텍스트로 진행될 전망. 당초 초안엔 ▦지방국세청 폐지 ▦외부감독위원회 설치 등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특히 지방청폐지엔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아 최종채택여부는 불투명한 실정이다. 백 위원장도 "위로부터 일방적 개혁이나 쇄신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어떤 경우든 국세청으로선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변화바람에 직면하게 됐다. 하지만 백용호 내정자의 부담도 크다. 사상 첫 학자출신 국세청장이란 점이 신선해보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MB측근'이란 사실에 더 힘이 실린다. 때문에 그는 국세청의 탈(脫)정치화, 탈(脫)권력화를 위한 어떤 쇄신작업을 펴더라도, 그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받아들여질 소지가 있다는 얘기다.
이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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