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했다. 왜 대법원에 상고했는지. 몇 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상고에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걸까', '끝까지 해보겠다는 걸까', '상고심에서 뒤집힌들 실추된 교육감 명예가 회복될까'….
공정택 서울시교육감 얘기다. 그는 지난해 7월 서울시교육감 직선 당시 부인 명의의 차명계좌를 재산신고 때 빠뜨린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서 벌금 150만원의 당선 무효형이 선고됐고, 최근 항소심에서도 원심이 확정됐다.
그에게 남은 선택은 2가지였다. 상고 아니면 상고 포기 후 중도사퇴. 기자는 사퇴 쪽을 점쳤다. 명예를 지고지순의 가치로 여기는 75세 교육자가 감내하기 어려운 상황과 맞닥뜨렸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실업고(전문고) 교사로 출발해 교장과 시교육청 국장을 거치는 50여 년의 교직생활에 '오점'으로 기록될 기소를 뒤로하고 미련없이 교육계를 떠날 것으로 봤다.
예상이 빗나갔지만, 한 교육계 원로 인사로부터 전해 들은 상고의 사유는 여러 부분들을 되짚게 만들었다. 상고 배경은 다분히 현실적이었다. 돈 문제가 가장 컸다. 원심이 최종 확정돼 교육감직을 내놓게되면 공 교육감은 총 28억8,500만원의 선거비용을 국가에 반납해야 할 처지가 된다. 선거비로 보전받았던 28억3,500만원과 기탁금 5,000만원을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에 고스란히 돌려줘야 하는 것이다.
지난 1월 공직자 재산변동 신고 때 공개된 그의 재산은 17억5,000만원 정도다. 산술적으로 따지더라도 자기 재산을 탈탈 털고도 12억원 가량을 더 빌려야 한다는 얘기다. 당장 10억원이 넘는 거액을 마련할 방도가 없는 공 교육감으로선 상고가 비상구 였는지 모르겠다. "돈 보다는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의지가 워낙 강했다"고 말하는 인사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선거비 보다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사실 공 교육감의 '비극'은 선거비 문제를 꼼꼼히 챙기지 못한 개인의 안이함과 처신 잘못에서 비롯된 측면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교육감 주민 직선 폐단이 그대로 투영된 결과라는 생각이다.
교육감 직선은 기본적으로 선거운동을 동반한다. 선거운동에는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데, 평생 교직생활을 한 교원 출신들이 어디서 평균 30억원(서울 기준)이 넘는 선거자금을 마련할 수 있겠는가. 후원회 구성도 금지돼 한푼의 선거자금이 아쉬운 후보들은 지인들에게 손을 빌리거나,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작년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나섰던 다른 후보들도 대부분 빚더미에 올라 있다.
2007년 2월 부산시교육감을 시작으로 최근 충남도교육감까지 잇따라 교육감 직선이 치러졌으나 10%가 겨우 넘는 투표율, 교육감들의 잇딴 비리 의혹, 교육을 무색케하는 극심한 이념 논쟁 등으로 선거 무용론까지 대두되고 있는 판이다.
교육감 직선제가 방향타를 잃고 헤매고 있는데도 집권 여당은 물론 야당 조차 관심밖이다. 한나라당은 공 교육감 선거비 문제가 불거진 지난해 10월 일부 의원들이 "직선제를 개선해야 한다"며 문제 제기를 한 게 전부다. 정부와 교육계도 다르지 않다. 교육감 직선에 수백 억원의 혈세가 투입되는데도, 정작 유권자들은 외면하는 '그들만의 선거'를 바로 잡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다. 입시 문제 였더라도 이랬을까.
허점 투성이 교육감 직선 체제에서는 '제2의 공정택'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 선거빚을 갚지못한 교육감이 개인파산을 신청하는 사태가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교육적으로 불행이다.
김진각 사회부 차장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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