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8월 29일자 대한제국 '관보 호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게재됐다.
'한국황제폐하와 일본국황제폐하는 양국간의 특수하고 친밀한 관계를 회고하여 상호행복을 증진하며 동양의 평화를 영구히 확보코자 하는 바,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서는 한국을 일본제국에 병합함만 같지 못한 것을 확신하여…'
그 7일 전 한국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일본국 통감 데라우치 마사타케가 날인한 '한일병합조약'의 공포(公布)였다. 당시 조선(대한제국)에는 '조약'이라는 근대 국제법의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 하는 사람이 절대다수였다. 그러나 이 생경한 '조약'은 이후 35년 간 조선 강토와 거기서 살아가는 인민의 운명을 결정짓게 된다.
한일병합조약 체결 100년(2010년)을 앞두고 과거사 정립을 통한 화해를 추구하는 국제학술대회 '일본에 의한 한국 병합 효력의 국제법적 재조명'이 22일 동북아역사재단 주최로 열린다.
이번 학술대회의 특징은 '법적 유효성'의 측면에서 1910년을 고찰한다는 점이다. 참여 학자들은 현재까지 계속되는 한일 갈등의 뿌리에 1910년의 강제 병합이 있다고 보고, 그것의 법적 정당성 규명과 갈등 해소의 방안을 모색한다.
■ "대립의 출발점은 '법'의 해석"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910년 조약과 관련한 법사학(法史學)적 논점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는 '1910년 조약이 역사적 사실과 법에 비추어 유효한가'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1910년 조약의 효력에 관해 (현대) 한국과 일본은 어떤 합의를 했는가'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아직 연구가 미진한 두 번째 논점에 초점을 맞춘다.
김 교수는 1965년 체결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대한 조약'(한일기본조약)의 제2조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체결된 모든 조약이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라는 조문을 해석하는 양국의 관점을 비교한다.
한국은 '이미 무효'를 "당초부터 효력이 발생되지 않은, 원천적 무효"로 해석한다. 반면 일본은 '이미 무효'를 "현재의 시점에서 '이미 무효'가 됐다는 객관적 사실을 서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석한다.
일본의 해석에 따르면 1910년 병합조약은 한국의 독립이 이뤄진 1945년 8월 15일에 실효된 것이며, 한일기본조약 제2조가 1910년 병합조약 체결 당시의 국제법적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한일기본조약이 '일본의 한반도 점령은 합법이었으니 책임질 것이 없다'는 논리와 상충되지 않는다는 논지로 이어진다.
김 교수는 식민지주의 청산과 극복이라는 과제를 가로막고 있는 벽이 이런 일본의 법논리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반복되는 일본 역사교과서의 한반도 지배 정당화 왜곡 기술도 '합법이었으니까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법 관념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 "식민주의 침탈은 그 자체로 불법"
킨히데 무사코지 오사카대 교수는 병합에 대한 인도주의적 비판은 쉽지만 그것이 전쟁이 연루된 범죄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법학적 맹점을 지적한다. 그래서 그는 '식민지 범죄'라는 새로운 국제범죄 개념의 도입을 제안한다.
그는 이 개념이 '실재 법률(lex lata)'이 아니라 '정의적 법률(lex ferenda)'의 범주에 속한다고 규정하고, 1910년 한일병합의 유효성을 따지는 도구로 삼는다.
킨히데 교수는 무장충돌의 경우에만 국한되던 '평화를 해치는 범죄'의 개념을 확대해, 개인이 평화롭게 살 권리를 해치는 것도 이 범죄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전쟁을 일으킬 권리를 국가주권에 포함시킨 베스트팔렌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전쟁을 평화롭게 사는 한 국가나 사회의 평화를 깨뜨리는 식민지 범죄 행위의 하나로 재규정할 것"을 제안한다.
킨히데 교수는 "특히나 한일병합에서 보이는 식민주의는 두 나라 간의 전쟁의 결과가 아니었고, 일본의 공공연한 군사력 사용이 외교적 협상의 일부였다는 점에서 반평화적 범죄였다"고 강조한다. 그는 제2차대전 전범을 다룬 도쿄재판에서 한국병합 문제가 빠진 것에 대해서도 "유엔에서 일본을 다룬 대다수가 식민지통치 국가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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