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한국 경제의 현주소는 어디쯤일까.
통계청을 비롯해 각 부처가 정기적으로 발표하고 있는 국민 생활 관련 통계 수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기준. 그러나 이것 말고도 한국인의 생활상과 경제 상황을 가늠해볼 수 있는 또 다른 잣대가 있으니, 바로 법원경매다. 경매 물건들은 먹고 입고 마시는 소비 형태나 업종의 부침, 사회 변화를 소리없이 알려주는 나침반과도 같은 셈이다.
불황의 징표
경제가 악화할수록 늘어나는 것이 경매 건수. 이런 저런 이유로 돈이 돌지 않아 대부분 은행 빚을 갚지 못한 결과다. 집을 담보로 한 대출을 못 갚아 집이 경매처분 되는 것은 물론, 심각한 불황은 대형 상가건물이 통째로 경매에 부쳐지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18일 법원경매정보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올들어 이날 현재까지 경매에 부쳐진 전국의 상가ㆍ시장ㆍ대형판매시설 등 상업시설은 모두 6,70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5,518건)에 비해 21% 늘어났다.
최근 광주 북구의 연면적 4만1,189㎡(1만2,460평) 규모의 10층짜리 대형 상가는 올해 상업시설 가운데 최고 감정가인 516억원에 경매가 이뤄졌다. 영화관과 골프연습장, 수영장, 사우나 등을 갖춘 덩치 큰 상가조차 불황의 직격탄을 피해가지 못한 것이다. 잘 나가던 병원들도 잇따라 경매 신세에 몰리고 있다. 지난해 1~6월까지 12건에 그친 병원경매는 올 들어서는 1년 만에 3배 이상 늘어난 38건에 달했다.
교회와 절로 튄 경기침체 '불똥'
불황의 불똥이 튄 곳이 또 하나 있으니, 바로 교회와 사찰. 높아진 물가와 교육비 부담 등으로 팍팍해진 살림살이 탓에 종교인들의 교회 헌금과 사찰 시주금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특히 교회의 경우 헌금이 운영 경비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데, 경매에 넘어가는 대부분 교회의 경우 줄어든 헌금이 교회 운영에 적지않은 차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유가에 쓰러지는 주유소와 찜질방
고유가에 무너지는 주유소들도 증가세다. 지난해 6월말까지 모두 37건이었던 주유소 경매건수는 올들어 이날까지 67건을 기록해 전년 동기비 2배 가까이 늘었다. 기름을 많이 쓰는 대표적 시설인 찜질방, 사우나, 목욕탕 등의 경매건수도 지난해 상반기 109건에서 올해에는 벌써 203건으로 불었다.
화류계도 불황과 단속엔 장사(壯士) 없다
경매는 최근 사회상도 반영한다. 술집이 많은 서울 북창동의 한 대형 룸살롱은 최근 4차례의 유찰 끝에 감정가(61억원)의 46%인 28억2,250억원에 넘어갔다. 마포의 한 안마시술소는 다음달 중순 감정가 25억9,378만원에 경매가 이뤄진다. 이처럼 대표적 유흥시설인 룸살롱과 안마시술소가 속속 경매에 부쳐지는 것은 불경기 탓도 있지만 성매매 단속 강화에 따른 수요 감소도 한몫 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실제로 올들어 6월말까지 경매에 부쳐졌거나 부쳐질 유흥시설은 모두 33건으로, 1년 전(11건)의 3배 수준으로 급증했다.
지지옥션 강은 팀장은 "법원 경매는 경기 흐름이나 세태 변화를 종합적으로 반영해 나타나는 하나의 창"이라며 "우리나라 경제ㆍ사회 현주소를 가장 가깝게 살펴볼 수 있는 잣대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태훤 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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