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6월 15일자 12면 '불법연행 과정 경찰폭행은 무죄'라는 기사를 읽었다. 기사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은 작년 9월 식당종업원을 때린 후 인근 노래방에서 40분만에 붙잡혀 연행되던 중 운전 중인 경찰관을 폭행해 공무집행방해 등으로 기소된 황모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는 것이다.
담당 판사는 "체포시점이 폭행 후 40분이나 경과했고, 장소도 현장과 떨어져 있는 등 현행범으로 보기 어렵고, 폭행죄는 긴급체포의 요건에도 해당되지 않아 향후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라 추가 소환을 요청할 수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위와 같은 사안에서 현행법의 해석대로라면 황씨를 현행범인으로 체포 할 수 없고 긴급체포도 할 수 없다. 담당판사의 친절한 안내(?)처럼 경찰관은 경찰관직무집행법(제3조)에 따라 "정지와 질문"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고, 확인된 신원을 통해 사후에 소환조사를 해야 한다.
그러나, 현행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르면, 신원 확인을 요청 받은 사람이 경찰관 질문에 답변할 의무가 없어 "싫다"라고 하면 그만이다. 신원확인 불능은 임의동행 사유도 안될 뿐더러 그것 마저도 거절하면 그만이다. 이처럼 경찰관이 정말 '법대로'하면 범죄혐의자를 발견한 경우에도 신원확인조차 못하고 보내줄 수밖에 없는 입법의 사각지대(死角地帶)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럼, "법을 고치면 되지 않느냐?"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맞는 말이다. 경찰청은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1999년부터 경찰관직무집행법을 개정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주요내용은 권위주의적이고 국민이 이해하기 힘든 용어를 알기 쉽게 바꾸고, 빈발하는 강력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범죄혐의자에 대한 신분증 제시 요구와 최소한의 신원확인 조치를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개정안에는 그간 논란이 되어온, 불심검문 불응시 처벌 조항도 없다.
시대가 바뀌면 법과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 국민은 경찰에게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라'는 임무를 주었지만 그에 상응하는 법적 제도적 권한 부여에는 너무 인색한 것이 현실이다. 이번 기회에 경찰이 일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제도적인 여건이 조성될 수 있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김호철 경찰청 법무과 경정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