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법 탄생의 비밀을 밝혀줄 블룸필드 보고서가 한은의 비밀금고에 보관돼 있는 것 같다." "그런 보고서는 없다. 한은 독립성을 저해하려는 불순한 음모다."
한은법의 어버이로 불리는 블룸필드 보고서(Bloomfield Report)가 있는가, 없는가?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현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은 지난해 한은 내의 중요 문서를 보관하는 금고에 블룸필드 보고서가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은 출신 선배를 통해 전해 들었다고 주장, 논란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강만수 저 <현장에서 본 한국경제 30년> ). 한은 측은 "이 보고서에 대해 들은 바 없다"며 한은과의 숱한 전쟁에서 옛 재무부(기획재정부+금융위원회)의 싸움닭을 자처한 강 전 장관의 아집과 편견을 반영하는 주장이라며 깎아 내렸다. 현장에서>
위헌 논란 빚은 한은 설립법
블룸필드 보고서는 미 뉴욕연방준비은행의 블룸필드(Arthur I. Bloomfield) 국제수지과장이 1949년 9월 서울을 방문, 이듬해 3월 연방준비은행을 모델로 당시 재무부에 제출한 한국은행 설립에 관한 권고안을 말한다. 한은법은 이 권고안을 바탕으로 약간 수정된 채 이 해 4월 국회를 통과됐다. 이 과정에서 행정관청인 금융통화위원회를 무자본 특수법인 한은에 두는 조항 등은 위헌 논란이 제기됐다.
블룸필드 보고서는 한은 설립을 둘러싸고 재무부와 조선은행 간의 이견이 크자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미국의 전문가를 초대해 자문하라고 지시하면서 만들어졌다. 이 보고서는 6ㆍ25 전쟁 때 소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모피아(재무부 출신 관료)들은 끈질긴 추적에 나서 1980년대 말 미 펜실베이니아주립대 도서관에서 영문판 블룸필드 보고서를 입수했다.
이들은 제정 당시의 한은법과 블룸필드 권고안을 분석한 결과, 논쟁의 핵심이 돼온 중앙은행의 독립 한계, 금통위의 법적 지위, 정부 권한의 한은 이관과 관련해 많은 오류와 왜곡이 있는 점을 발견했다며 득의양양했다. 예컨대 블룸필드 권고안에는 한은에 금통위를 둔다는 규정이 없었는데 한은 제정법에 추가한 것은 대표적 위헌 사례라는 것이다. 국가의 기능(function)은 법에 의해 위임될 수 있지만, 국가의 기관(organ)은 타인인 특수법인 한은에 들어갈 수 없다는 논리다.
한은과 정부 간에는 불신이 쌓이면서 때만 되면 포성이 오고 갔다. 모피아 출신의 모 인사는 "카인의 후예 간에 떼와 오기로 맞서 잔혹하게 싸웠다"고 회고했다. 민주화열풍이 거셌던 87년에는 한은이 중앙은행 독립을 명분으로 선제공격을 했지만, 95년에는 정부가 포문을 열었다. 외환위기를 겪던 97년에는 국제통화기금(IMF)에 의해 타협점을 찾았다.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한 한은법 개정이 다시 쟁점이 되고 있다. 한은의 설립 목적에 금융안정 기능을 추가하고, 금감원과의 공동검사 외에 단독 조사권까지 부여하자는 게 핵심이다. 신속한 통화신용정책 수립을 위해선 거시 감독권을 행사해 부실을 선제적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한은 입장은 일견 타당하다. 미국이 FRB의 금융감독권 강화를 골자로 한 금융규제 개혁안을 내놓은 것도 한은에 힘을 실어주는 듯하다.
하지만 통합감독체계를 채택한 우리나라에서 한은에 단독검사권을 준다면 피감기관의 중복자료 제출에 따른 불편도 감안해야 한다. 현행법상 한은과 금감원이 대부분의 정보를 공유하도록 돼 있는데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은 밥그릇싸움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감독권을 빌미로 금감원이 금융기관 감사를 독점하려 하고, 한은이 여기에 숟가락을 얹으려는 의도가 있다는 시장의 이야기가 빈 말이길 바랄 뿐이다.
금융감독체계 전반 손질해야
한은법 개정 문제가 재연된 것을 계기로 금융감독 체계 전반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금융위기 수습 과정에서 노출된 기관간 불협화음의 재발을 막기 위해선 금융시스템 전반의 컨트롤 타워를 어디에 둘 것인지를 교통정리해 줘야 한다. 국제금융과 국내금융 업무, 금융위와 금감원의 통합 문제 등도 수술대에 올려놓아 최적의 금융감독체계 개선안을 찾아야 한다.
이의춘 논설위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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