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언어와 맞서는 운명을 타고난 자다. 몸과 정신, 감각과 의식의 점접이라는 주제를 관능의 언어로 표현해온 시인 채호기(52)씨의 다섯번째 시집 <손가락이 뜨겁다> (문학과지성사 발행)는 다투고, 화내고, 뒹굴고, 도망가려고도 하지만 결국 언어와 한몸으로 포개져 살 수밖에 없는 시인의 운명을 노래한 초상화다. 노래한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시인은 절규한다. 손가락이>
'너는 갇혀있다/…/ _자기 자신의 감옥, 모국어의 감옥, 자각할 수조차 없는 거울의 감옥!'('자화상'에서). 그 운명의 위압감은 압도적이다. 채씨는 '강철 프레스 같은 세계가 골통을 압박하듯 너의 생활반경을 옥죈다'고 느낄 정도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위압감은 그에게 뜨겁고 아름다운 에로스적 시어의 자양분이 된다.
채씨에게 시인이란 '사랑을 표상하는 모든 단어를 훔쳐먹는 공포의 포식자'이자 '언어의 정자를 수정받아 꽃을 잉태하는 관능적인 신부'이며, 시작(詩作)이란 '언어와의 격렬한 정사를 통해 사랑을 수태하'('당신은 누구인가'에서)는 행위이기도 하다.
밋밋한 일상 속에서는 쉽게 자각하지 못하는 언어에 얽매인 시인의 운명, 그것은 수천 수만번 벼려진 날카로운 칼처럼 의식의 극점에서 포착된다. 물론 그 과정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시인은 그 고통과 정면으로 맞선다. '고통을 파내기 위해 몸을 판다. 그러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도구가 문제다/ 생각으로 파내던 몸을 삽으로 파낸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한다'('통점은 있다'에서)
언어를 향해 뻗어있는 시인의 예리한 촉수는 이제 돌이 말을 걸고, 산이 말이 되는 경지에 다다른다. 어느 토요일 파주 감악산을 찾았다가 유난히 검고 큰 돌이 눈에 밟혔다는 시인, 둘러가고 싶었지만 침묵하는 돌의 말은 너무나 유혹적이었다. 침묵이 말이 되는 그 역설은 놀랍다.
그 놀라운 체험 앞에서 시인은 '어떤 말은 귀로는 들을 수 없다/ 어떤 말은 온몸으로 듣게 된다'('돌의 말3'에서) 고 고백한다. 채씨의 고백은 마치 머리나 심장이 아니라 온몸으로 시를 써야 한다고 했던 40여년 전 시인 김수영의 그것과 포개지는 듯도 하다.
채씨는 '시인의 말'에 "골똘하게 시를 바라보고 있을 때 나는 사라지고 이상하게도 타인의 낯선 눈으로 사라진 나를 바라보는 말들이 있었다"고 썼다. 그 말들은 아프다. 그의 시들은 그 아픔의 견뎌냄을 통해 나온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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