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종교전쟁' "성당과 PC방은 항상 열려있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종교전쟁' "성당과 PC방은 항상 열려있다"

입력
2009.06.23 01:51
0 0

종교전쟁/신재식 등 지음/사이언스북스 발행ㆍ648쪽ㆍ2만2,000원

"절대로 퇴치되지 않고 때로 사람을 대량으로 감염시켜 인류에게 큰 재앙을 주는 지독한 바이러스처럼 종교도 끈질기게 살아 남아 인류를 괴롭히는 정신 바이러스가 아닐까요?"(52쪽)

2006년 12월 10일 미국 터프츠대학 인지연구소에서 박사 후 연구과정에 있던 장대익 동덕여대 교양과학학부 교수가 흩날리는 눈발을 보며 띄웠던 메일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이 영어권 지식인 사회를 요동치게 했던 바로 그 때였다. "장대익 올림"으로 맺은 메일의 수신자는 신재식 호남신학대 신학과 조직신학 교수, 김윤성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두 명.

이후 반 년 동안 이들이 주고 받은 13통의 이메일은 종교에 관한 에세이이자 소논문이었다. 논의가 깊어짐에 따라 이들은 2008년 4월 태국 치앙마이에서 만나 '과학과 종교의 미래'에 대해 10시간여의 대담을 나누기도 했다.

세 사람의 정담의 현장에는 우리 시대가 오랫동안 망각하고 있던 '대화의 변증법`이 온전히 구축돼 있다. 세 사람이 주고 받은 담론은 문제 제기_전개_결론 도출이라는 3단 논법적 과정의 미덕을 구현해 보이는 실험실이었다. 과학, 신학, 종교의 만남과 진화의 과정을 생생히 구현한 이메일은 그 징검다리였다. "악의 축" 운운하며 세상을 극단적 이분법으로 몰아넣는 광기와 오만에 대한 인문주의적 반성이 온라인이라는 지극히 통속화된 공간에서 이뤄진 것이다. 관심 있는 네티즌이라면 온라인으로 접근할 수도 있었다.

"성당과 인터넷 PC방은 항상 열려 있다. 종교와 과학은 원래 이웃사촌"(57쪽ㆍ남미 배낭 여행 중의 신재식)이라는 이메일은 "개신교인에서 결국 무신론에 가까운 불가지론적 입장의 세속적 종교학자"(91쪽ㆍ일본 출장 중 신 교수의 편지를 보고 김 교수가 쓴 답장)가 되기까지의 내력을 불러냈다. "부모가 자녀에게 종교를 건네주는 것은 폭력"(98쪽)이라는 내용과 어느 대형교회의 유명 목사 앞에 천진한 어린이들이 도열해 있는 사진을 배치, 의도가 극적으로 부각된다.

이들의 대화는 "반성 없는 과학이 중세 기독교와 다를 게 뭔가?"(113쪽)라는 회의에서 "종교는 말살해야 할 정신의 바이러스"(141쪽)라는 것까지 '수위'를 넘보기도 한다. 그러나 "실재의 깊이는 종교나 과학보다 깊다"(171쪽)며 제3자에 의해 오롯이 변증법적으로 통합된다. 이를 지켜보는 것은 어떤 매체라도 제공하지 못할 지적 감흥을 맛보는 것이기도 하다.

그 현장은 무한히 열린 담론의 자리다. 김 교수는 "기도나 기적은 효과가 아니라 의미의 문제"(203쪽)라며 "물질성의 토대 위에서 솟아나는 의미의 영역은 영원히 소진되지 않을 것"(212쪽)이라며 괄호를 열어두었다. 초등학교 시절, 전국성경시험대회에 출전할 정도로 '골수 신자'였다가 이제는 스스로 "불가지론자"로서 종교와 과학의 만남에 관심을 갖는 그의 고백은 현실적으로, 기적을 믿는 근본주의적 기독교에 대한 발언으로 특히 주목된다.

제목의 '전쟁'이란 말을 두고 세 사람은 너무 선정적인 말은 아닌지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나 21세기에도 인간의 이성을 일거에 무색케 하는 종교에 대해 이제는 전면전을 펼칠 때가 됐다는 데 합의를 보았고, 실제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장대익 교수는 "신변잡기적 이야기가 과학과 종교에 대한 깊은 담론으로 진화했고, 오랫동안 고민해 오던 스스로의 종교적 정체성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었다"며 "서로에 대한 우정과 지적 연대감을 확인했다"고 기억한다. 그는 책에 실린 글 중 일부가 인터넷 매체에 연재되는 동안 "격려뿐만 아니라 질책, 심지어 저주의 이메일까지 있었지만 우리는 독자들의 전반적인 관심과 상원에 감동했다"고 회상했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