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률 전임 청장이 중도 하차한 이후 지난 5개월 동안 수많은 인사들이 차기 국세청장 하마평에 오르내렸지만, 적어도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은 한번도 거론된 적이 없었다. 그런 만큼 백 위원장의 차기 청장 내정은 '깜짝 인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더구나 국세청 43년 역사상 세정(稅政)전문가도 사정(司正)전문가도 아닌, 더구나 학자 출신이 임명된 예는 한번도 없었던 터라, 이번 인사는 더욱 파격적이란 평가다.
그렇기 때문에 백 내정자에게서 읽을 수 있는 인사 키워드는 단연 '쇄신'이다. 5개월 공백 끝에, 국세청과는 단 하나의 연결고리도 없는 순수 외부인사에게 청장 자리를 맡겼다는 것은, 인사권자의 의중이 '과감한 변화'에 실려있다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하는 대목이다.
주목할 점은 이명박 대통령과 백 내정자의 관계다. 백 내정자는 대선후보시절부터 이 대통령을 지원해온 학자그룹의 좌장이자, 'MB노믹스'의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철학에 대한 이해가 높다는 얘기다. 때문에 향후 그의 국세행정 쇄신행보는 이 대통령의 의중이 십분 반영된 것으로 해석해도 무방하다는 평가다.
쇄신의 관점에서 백 내정자는 향후 국세청 기강확립과 신뢰회복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숱한 지적을 받아왔던 줄대기식 인사관행을 척결하는 방안, 지방청 폐지 등을 포함해 비대해진 조직을 슬림화하는 방안, 세무조사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방안 등이 우선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하지만 백 내정자가 밀어붙이기식 인사태풍이나 조직개편을 단행할 것 같지는 않다. 한 공정위 관계자는 백 내정자에 대해 "칼을 휘두르는 스타일이 아니다. 매우 실용적이고 합리적이며 개혁을 하더라도 조직논리를 충분히 경청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특히 국세청에 전혀 연고가 없고 조직장악도 되어 있지 않는 상황에서 거대 국세청 조직을 잘못 손댈 경우, 거센 역풍에 직면할 수도 있다. 경기침체로 인해 세수확보가 절실한 상황 역시, 조직을 너무 흔들기 힘든 요인 중 하나다.
이런 맥락에서 허병익 차장(청장대행)을 포함, 국세청장 후보로 거론됐던 현 고위층의 거취문제가 백 내정자에겐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자칫 서먹한 사이가 될 수 있겠지만, 조직안정차원에서 백 내정자가 이들을 붙잡을 가능성도 크다는 관측이다.
이성철 기자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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