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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여성시대와 함께하는 우리 이웃 이야기] 1967년 군에서 운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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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여성시대와 함께하는 우리 이웃 이야기] 1967년 군에서 운전 시작…

입력
2009.06.23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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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에 군 입대하면서 처음 운전을 알았습니다. 직업이 되겠구나 생각했지요. 송곳 꽂을 땅 한 평 없는 저로서는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보다 더 대단한 발견이었습니다. 군 운전교육대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를 운전병으로 만들자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매 맞는 나보다 때리는 조교가 더 힘들고 가슴 아팠을 겁니다.

그래도 그런 조교가 있었기에 제가 운전병이 됐고 농사 품 안 팔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운전기사가 되었지요. 군 면허증을 받고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사법고시 합격을 한들 이보다 좋을까 싶더군요. 고된 군 생활도 농사 품 파는 것에 비하면 신선놀음이었지요.

운전병은 '3보 이상 승차'라는 구호대로 '정말 편한 직업이 되겠구나' 생각했고, '운전기사만 되면 나 같은 무지렁이도 장가 갈 수 있고 집도 사고 아이들 학교도 보낼 수 있겠구나' 별의별 상상을 다하였지요. 정말 군에서 집사람 만나 결혼하고 전역해서는 운전기사가 되어 직업전선에 뛰어 들었습니다.

그런데 평생 운전을 하면서 얻은 결론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운전자는 말이 거칠다, 육두문자를 잘 쓴다, 무식하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더군요. 저도 얼마간 그 선입견을 인정하는 편입니다. 그래도 생각해보면 저는 그래도 좀 덜했던 것 같습니다. 워낙 자부심을 갖고 선택한 직업이라 양보도 많이 하고 그다지 욕할 생각도 없었던 것 같아요. 운이 좋아서 그랬는지 42년동안 운전을 하면서도 큰 사고는 한 번도 겪지 않았습니다. 또 자부심을 갖고 운전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서 그랬는지 시비가 일기 전에 먼저 사과하고 매듭 짓곤 했지요.

아이들 학교 보내는 것이 쉽지 않아 이역만리 사우디아라비아에 가서 덤프트럭 기사로 일하면서 모래바람도 맞았습니다. 홍해바다에서 문어 같은 해산물도 직접 채취해 많이 맛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우디 생활 채 일 년을 며칠 앞두고 내가 운전하던 덤프트럭 전복사고로 갈비뼈가 4대나 골절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목발을 짚고 조기 귀국할 수밖에 없었지요. 김포공항에 내려서는 아내와 아이를 붙들고 울기도 많이 했는데, 국내 병원에 입원하여 산재보험 급여를 3개월 더 받고 사우디 생활을 매듭지었습니다.

이후 개인택시를 갖게 되면서 하루에 300km씩 달렸습니다. 기름값, 식대를 제외하면 하루 10만원 꼴이니 20일 꼬박 일하면 한달 에 250만원쯤 손에 쥐게 되지요. 하지만 애경사로 몇 날 일을 못하는 것을 감안하면 월 평균 수입은 200만원 정도 됩니다. 그 돈으로 살림하랴, 3남매 교육시키랴, 우리 집사람 정말 용하지요. 남의 아이들 돌보는 일을 비롯해 부업이란 부업, 열심히 하면서 살림에 보태 제가 마음 놓고 운전할 수 있게 격려해주었지요. 아내가 그렇게 열심히 한 덕분에 내 집에서 등도 붙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저 길만 보고 다니는 인생인데도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가족에게는 "회갑만 되면 운전을 접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그렇게 회갑을 맞아 운전이 지겹기도 해서 차를 팔고 쉬어보리라 마음먹고 실행에 옮겨 석 달을 보냈는데 '젊은 60살'은 어디 갈 데가 없더라구요. 등산도 하루 이틀이지, 그렇다고 경로당은 말도 안되지, 주머니에 돈 떨어지니 허리만 굽어지면서 자신감도 없어지더군요. 할 수 없이 인력시장에 가서 날품도 팔아 보았는데 운전에 비하면 영 아니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모자라는 생각을 했나' 후회를 하고 방황 끝! 형수한테 도움도 받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모아서 4.5톤 개별화물차를 구입해 다시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그래도 여유를 가지고 하는 운전이라 아주 가끔은 책도 읽고, 'MBC 여성시대'에 편지도 쓰면서 자신감을 찾아갑니다. 일 할 수 있다는 즐거움… 아내가 저에게 말합니다. "남들은 큰 차를 하다가도 나이 들면 개인택시를 사서 한다는데 당신이란 사람은 왜 그리 반대로만 가느냐?"

힘이 들어 끙끙 앓아 몸져누울 때도, 다리를 다쳐서 힘들어 할 때도, 다쳐서 꿰매고 해도, 내가 선택해서 즐겁게 일하니 참 이것도 팔자란 것 외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답니다. 그런데 화물차 운전이 육체적으로는 힘이 들어도 휴식시간이 많고, 밤새워 운전해도 정해진 운임이 있으니 서두르지 않아도 되고, 나이 먹은 저한테는 적성에 딱 맞아요.

여유 있는 운전, 언어 순화, 연장자로서의 행동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요. 저를 따라 책을 보는 동참자들이 하나 둘 생기니 운전자들끼리의 육두문자도 줄어들었습니다. 이젠 담배도 끊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만약 성공하면 연장자로서 의지도 증명되고 또 다른 본보기도 되겠다 싶어 벌써 석 달을 금연했지요. "진짜 독한 사람"이라고 놀림도 받았습니다.

"동료 간에 싫은 소리는 면전에서 하고, 칭찬은 없을 때도 많이 하라"고 조언을 하기도 합니다. "선후배 간에 색안경 쓰고 보지 말고 늘 긍정적으로 밝게 봐주라"고도 얘기합니다. 자연스럽게 동료들끼리의 분위기도 좋아지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상식선에서 순우리말을 쓰려고 노력도 합니다.

여러분! 혹 재미있게 읽으신 책, 우리 화물 주차장에 기증하실 분 있으신지요? 기사들끼리 읽는 책값이 적지 않게 부담이 됩니다.

서울 노원구 상계8동 - 김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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