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공기관장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것도 공포탄이 아닌 실탄을 장착한 채. 작년 5월 정부가 '공공기관장 계약경영제'를 도입한다고 했을 당시 "겁주기 수준에서 그치지 않겠느냐"던 예상을 뒤집은 것이다. 결코 엄포가 아니었음을 확인시켜줌으로써 공공 개혁에 채찍질을 하겠다는 의도지만, 평가의 공정성 등을 둘러싼 역풍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왜, 어떻게 평가했나
공공기관장은 현 정부가 밀어부치고 있는 공공 개혁을 추동해야 하는 중심. 공공기관장이 적극적으로 나서주지 않으면 공공 개혁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정부로선 공공기관 노조를 직접 압박할 수단이 없는 만큼, 공공기관장을 통해 간접적으로 압력을 넣어 '철밥통'을 부숴 나가겠다는 것이다.
실제 50여개 평가 지표 중 기관 고유 과제에 50%, 그리고 공공기관 선진화와 경영 효율화 등 공통 과제에 50%의 가중치가 부여됐다. 공통과제엔 민영화와 통ㆍ폐합, 인력 조정, 보수 조정, 청년인턴 채용, 노사 관계 등이 포함됐다.
해임 건의 대상으로 분류된 4개 기관장 역시 대부분 공통과제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 평가단의 설명. 평가단 관계자는 "해임 건의 대상이 된 4개 기관장을 보면 고유 과제보다는 공통 과제의 점수가 50점 만점에서 20점도 채 안 될 정도로 더 낮았다"며 "해당 기관장들은 선진화, 효율화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결국 공공기관장들이 고유 업무를 얼마나 잘 수행했느냐 보다는, 정부의 공공 개혁 시책에 얼마나 충실히 따라줬는지가 해임 여부를 가른 것으로 보인다.
후폭풍 일까
이번 평가 결과를 둘러싼 논란의 소지도 적지 않다. 우선 평가의 공정성과 투명성. 민간 기업의 인사 평가에도 적잖은 공정성 시비가 있는 마당에, 하물며 공공기관장의 진퇴를 좌우하는 중차대한 평가인만큼 잡음이 상당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해임 건의 대상이 된 공공기관장들에게 단 한 차례 소명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평가단 간사인 박순애 교수는 "평가지표를 세분화해서 주관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다"고 강조하지만, 대형 공공기관장은 모조리 제외된 상황에서 당사자들로선 "힘없는 이들만 희생양이 됐다"고 받아들일 소지가 다분하다.
과연 1년 단위로 성과를 평가해 해임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타당한지도 논란거리다. 결국 기관장들이 단기 성과에 치중할 수밖에 없고, 장기적 안목의 경영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3자인 정부가 공공기관 노사 문제에 간접 개입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노조 전임자가 몇 명인지, 단협 조항이 어떻게 돼 있는지 등이 기관장 평가 대상이 됨으로써 정부가 우회적으로 노사 문제에 개입하는 월권을 행사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향후 공공기관장이 정권의 시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공공기관장이 정부 정책에 최대한 부응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해도, 소신 없이 정부의 눈치만 보는 공공기관장만 양산하는 부작용이 뒤따를 가능성이 제기된다.
김준기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공공기관은 기관장이 들어서면 곧 바로 노조와 한 배를 타기 때문에 평가를 하고 책임을 묻는 건 필수적인 제도로 본다"며 "하지만 선진화 정책을 모든 기관에 일괄적으로 적용하고, 기관장 임기를 보장하지 못하는 등의 부작용에 대한 해소책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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