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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벌거벗은 통계' 여성의원 50% 늘었다? 알고보니 2명서 3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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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벌거벗은 통계' 여성의원 50% 늘었다? 알고보니 2명서 3명으로

입력
2009.06.23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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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크래머 지음ㆍ염정용 옮김/이순 발행ㆍ248쪽ㆍ1만1,000원

"거짓말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정치가 벤자민 디즈레일리의 이 말은 통계의 과학적 허구성을 꼬집을 때 자주 인용된다. 하지만 어떤 주장이 '객관적' 데이터로 무장한 통계를 앞세우면 반박하기가 여전히 쉽지 않다. 그래서 "주가가 떨어지면 미니스커트가 유행한다" "비행기가 기차보다 안전하다" 같은 그릇된 속설이 아직까지 통용되고 있다.

<벌거벗은 통계> 는 독일 도르트문트 공대 통계학과 교수이자 슈피겔 등 독일 주요 언론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발터 크래머(61)가 통계의 '가짜 정확성'을 샅샅이 해부한 책이다. 신문과 방송, 논문과 저작들은 날마다 무수한 통계를 쏟아내며 객관성을 웅변하지만, 저자는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려는 목적으로 통계를 들먹인다"며 통계의 '숫자 장난'을 가차없이 까발린다.

통계에서 가장 속기 쉬운 것은 과장하고 부풀리는 데 더없이 유용한 도구인 퍼센트(%). 예를 들어 어느 기업의 매출액이 첫 해에 1%, 다음해에 1.49% 늘었다면, 매출액의 증가는 자그마치 49%라는 경이적인 결과가 나온다. "여성 국회의원 비율이 50%나 상승!"이라는 신문 기사 제목에 크게 기뻐할 필요도 없다. 처음에는 2명이었는데, 지금은 3명에 불과한 것일 때가 많으니까.

평균값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과학적 사고의 근거로 동원하는 평균값은 수학적으로는 아무런 오류가 없지만 사실을 왜곡할 때가 많다. 농부 1명이 소 40마리를, 나머지 9명이 0마리를 가졌다면, 이 집단은 평균 4마리의 소를 소유했다고 '통계적으로'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소가 없는 9명에게 이 평균은 별 위안이 되지 않는다." 분포가 제시되지 않은 평균값, 즉 산술평균은 절반의 가치도 갖기 힘들다.

임의추출 표본이 잘못된 통계도 부지기수다. 뉴욕타임스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들의 기대수명은 일반 남성보다 4년이 더 긴 73.4세"라며 "더 오래 살려면 지휘자가 되라"고 암시적인 충고를 덧붙였지만, 이는 젊어서 죽은 음악천재들이 임의추출 표본에서 빠졌기 때문에 나온 결과다. 이와 같은 논리라면 우리는 나이든 후에야 차지하게 되는 지위인 은행지점장, 대학교수, 가톨릭 대주교 등도 더 오래 산다고 얼마든지 '입증'할 수 있다.

더 이상 과학적일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그래프도 의도대로 손쉽게 조작할 수 있다. 100에서 110 사이의 눈금에서 단조롭게 움직이는 침체기의 매출 곡선은 종이도 아낄 겸 0부터 100까지 도표의 아랫부분을 싹둑 잘라낸 뒤, 위 아래로 잡아늘려 세로축을 확대하면 다이내믹한 매출 곡선으로 변신시킬 수 있다. 끄트머리에 굵은 화살표까지 얹으면 금상첨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숫자도 믿을 수 없는가. 저자는 "다행스러운 사실은, 통계를 이용한 속임수는 오래가지 못한다"고 말한다. 하나를 속이면 또 다른 것을 속여야 하므로, 하나의 통계조작은 거짓말의 눈사태를 일으킨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처럼, 영원히 모든 사람을 속일 수는 없는 법.

통계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비결을 일러주는 저자의 목소리가 너무 재치있고 유쾌해서 읽는 내내 큭큭 웃음이 터져나오는 이 책은 "덧셈 뺄셈만 할 줄 알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책을 목표로 집필했다"는 저자의 말마따나 누구라도 쉽게 읽을 수 있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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