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라를 위해 몸바친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는 것은 후세의 당연한 책무이다. 융성한 나라일수록 대의를 위한 고귀한 희생을 높이 받들어 모신다. 그 것이 나라를 지탱하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우리는 6ㆍ25 전쟁에서 위급한 나라의 부름을 받고 꽃다운 나이의 목숨을 바친 수많은 호국용사들의 유해를 산야에 버려둔 채 60여 년을 보냈다.
산야에 버려진 13만 유해
이름 모를 산골짝과 들녘에 그렇게 남겨진 영령은 무려 13만 여명에 이른다. 먹고 사는 데 급급한 나머지 오늘의 이 나라를 있게 한 호국의 얼들을 차디찬 전장의 참호 속에 묻어 둔 채 수십 년을 지내 온 것이다. 수많은 국민의 자식들의 목숨을 빌려 명맥을 이은 국가가 이를 되갚지 못한 잘못을 무엇으로 변명할 수 있을까.
2000년 뒤늦게나마 6ㆍ25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을 시작한 지 9년째가 됐다. 그 동안 조직과 시설의 확충, 관련법 제정 등의 노력을 통해 호국용사 3,000여명의 유해가 그렇게도 그리던 햇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전체 13만 여명의 넋을 생각하면 초라하고 부끄럽기 그지없다.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우리가 원하지 않았던 전쟁을 준비 없이 치른 탓에 전사자 매장관련 기록이 극히 제한돼 지역 주민과 참전용사들의 증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사자 매장 장소를 알고 있는 6ㆍ25 세대는 모두 고령이어서 하루가 다르게 수가 줄고 있다.
개발에 따른 지형 변화와 전투현장의 훼손도 심각하다. 직계 유가족의 사망에 따라 전사자 신원 확인에 필요한 DNA 시료 채취도 갈수록 어렵다. 이 때문에 앞으로 5년 정도의 시간이 유해 발굴사업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믿는다.
만약 이 기간에 국가사회적 노력을 집중하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는 수많은 호국의 얼을 땅 속에 영원히 묻어 놓고 지내는 부끄러운 국민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령들을 조국의 품에 모시는 일은 6ㆍ25 세대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 세대가 반드시 매듭지어야 한다. 후대에는 훨씬 어려운 과업을 이대로 그냥 넘겨줄 수는 없는 일이다.
정부는 6ㆍ25 세대와 직계 유가족이 생존해 계실 때 가시적 성과를 얻기 위해 지난해 8월 범정부 차원의 '전사자 유해발굴사업 활성화 대책'을 마련해 시행했다. 이에 따라 올 들어 이미 지난해 전체 발굴실적을 넘어서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더욱 열성적인 노력과 참여가 절실하다.
전국의 산야에 산재한 전사자 유해의 정확한 소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들의 적극적 제보가 필요하다. 전사자 유가족들도 전국 보건소에서 맡고 있는 전사자 신원 확인을 위한 DNA 시료 채취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기를 당부한다. 일반 국민도 어느 산에서든 전사자 유해와 유류품을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신고하는 참여 의식이 필요하다.
국민 관심과 참여 절실
이렇듯 정부와 국민의 노력이 함께 할 때, 더 많은 전사자들이 조국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호국용사의 넋과 유가족의 아픔을 위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국민 모두가 조국 대한민국을 내 한목숨 바쳐 지킬 가치가 있는 나라로 여기는 신뢰와 애국심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핵 위협 등 전환기적 안보위기 상황에 처한 이때,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을 통한 국민적 일체감 조성은 한층 의미 있는 시대적 과업이라고 본다.
6월의 끝 자락, 휴전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전장터로 떠나보낸 외아들이 행여나 살아 돌아올까 기다리고 있는 105세 노모의 한 맺힌 설움을 가슴에 새긴다. 그리고 새로운 각오로 다시 다짐한다. 마지막 한 분을 모시는 그날까지 우리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박신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 · 육군 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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