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의 유기농 딸기밭을 방문했을 때였다. 비좁은 농로를 끼고 끝간 데 없이 펼쳐진 비닐 하우스의 대열이 장관이었다. 점심 때가 되자 비닐 하우스 밖으로 일꾼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냈다. 다리도 굽고 허리도 굽어 어떻게 일을 하실까 염려가 되는 할머니들이었다. 작업복이나 키도 얼추 비슷해서 분간이 잘 가지 않았다. 농장 사장님 내외분은 정성껏 밥을 차려 대접했다.
멸치를 우려 끓인 아욱국을 할머니들은 둘러앉아서 맛있게 먹었다. 사장님이 보물을 보여주겠다며 손짓을 했다. 그렇지 않아도 비닐 하우스 하나하나가 내겐 전부 보물창고였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다른 곳보다 좀더 습하다는 것을 빼면 휴경지라는 느낌이 들 만큼 휑한 곳이었다. 보물찾기하듯 뚫어지게 바라보니 그제야 땅 위로 뾰족뾰족 솟아오른 식물들이 보였다. 아스파라거스였다.
몇 년 공들인 끝에 올해 처음 수확을 앞두고 있었다. 농약을 일체 쓰지 않기 때문에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김을 매야 했다. 며칠만 손을 놔도 금방 잡초들로 뒤덮여 할머니들이 없다면 이 일은 꿈도 꿀 수 없다고 했다. 저분들이 돌아가시면 이 일도 접어야 할지 모른다며 사장님이 한숨을 쉬었다. 2026년이면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로 접어든다. 도시에서는 해야 할 일 없어 뒷방으로 물러앉는 노인들이 이곳에서는 대접 받는 인력이었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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