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외환위기 때와 이번 경제위기를 비교해보면, 정부의 대응방식에서도 재미있는 차이가 발견된다. 예전 정부가 '하이 키(high-key)'전략을 구사했다면, 지금은 전혀 상반된 '로우 키(low-key)'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환란 당시 DJ정부는 확실히 '하이 키'였다. 위기의 직접적 원인이었던 외화유동성에 좀 여유가 생기자, 정부는 1년도 못돼 '위기는 끝났다' 심지어 'IMF체제 조기졸업'까지 운운했을 정도. 어려움을 이겨낸 한국민의 저력이 강조되고, 동시에 환란탈출을 주도한 정부성과가 부각됐다. 사방이 낙관론 일색이었다.
하지만 현 정부는 정반대다. 절대로 장밋빛 전망을 내놓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지금쯤 '위기탈출' 선언과 함께 샴페인 몇 병은 터뜨렸겠지만, 지금은 시종 낮은 자세, 즉 '로우 키'로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국은행 총재보다도 더 신중하고 더 조심스러워 하는 보기 드문 광경까지 자아내고 있다.
왜 이렇게 달라진 것일까. 물론 아직은 경제가 불안한 탓이다. 국민들에게 희망을 준답시고 현실을 과대포장 하느니,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정직한 정부의 자세 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이것 말고도 정부가 몸을 낮추는 까닭에는 정교한 '심리전' 차원도 있을 것이다. 첫째, 경기판단을 '신중모드'로 가져갈 경우 정부의 리스크는 줄어든다. 예컨대 정부가 낙관적 스탠스를 취했을 경우엔 '잘해야 본전'이고, 행여 예상만큼 경제가 좋아지지 못하면 여론의 뭇매를 맞을 터. 반면 '로우 키'를 유지했을 때에는 경제가 좋아지면 그걸로 좋은 것이고, 혹시 경제가 어려워져도 빠져나갈 구멍이 생긴다.
둘째, 경기판단과 정책대응은 동전의 양면이다. 만약 이 시점에서 정부가 '위기는 끝났다'식으로 나설 경우, 더 이상 부양기조를 지탱할 명분이 없어진다. 아직은 '출구카드'을 뽑고 싶지 않은 정부로선, 당분간 '로우 키' 자세를 유지해야만 한다.
금주 경제 캘린더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가 될 '하반기 경제운용계획'(25일 발표)도 이런 관점에서 살펴보면 어떨까 싶다. 분명 전체적으론 '위기는 아직도 진행중이다→따라서 확장적 거시정책을 유지한다'는 '로우 키' 스탠스가 흐를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게 옳은 것인지는 토론과 논쟁이 필요하겠다.
기타 주목할 일정으론 미국연방공개시장위원회 개최결과(25일 새벽)가 있다. 제로금리 변경가능성이 희박한 만큼, 경기판단에 대한 변화여부를 더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일반 국민입장에선 23일 세상에 첫 선을 보일 5만원권이 가장 궁금할 것이다.
이성철 경제부 차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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