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60년대만 해도 북한 축구는 아시아 최강이었다.
1966 잉글랜드월드컵대회가 북한 축구의 하이라이트였다. 냉전시대였던 당시 한국은 북한에 패할 것을 우려해 아예 월드컵 예선 출전을 포기했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16개의 본선 티켓 가운데 아시아, 오세아니아, 아프리카 등 3개 대륙 지역예선에서 1개국에만 본선 기회가 주어졌지만 강호 호주를 제치고 월드컵 본선 티켓을 거머쥔 북한은 첫 출전한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8강의 기적을 일으켰다.
북한은 칠레와 2차전 1-1 무승부에 이어 최종전에서 강호 이탈리아를 1-0으로 누르는 파란을 연출했다. 포르투갈과 8강에서도 전반 25분까지 3-0으로 앞서 갔으나 에우제비우에게 네 골이나 내주는 바람에 3-5로 석패했다.
이후 북한 축구는 폐쇄적인 체제 특성과 경제난 등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월드컵 예선 참가도 들쭉날쭉했다. 1970 멕시코대회 예선은 불참했고, 1974 서독대회는 최종예선 진출에 실패했다.
1978 아르헨티나대회를 거른 뒤 1982 스페인대회에 나섰지만 최종예선에서 탈락했고, 1986 멕시코대회에선 1차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1990 이탈리아대회에선 한국에 0-1로 지는 등 최종예선 최하위에 머물렀다.
94 미국대회에도 최종예선 6개국 중 최하위(1승4패)에 그쳤다. 한국은 당시 북한과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3-0으로 이기고 승점이 앞서 있던 일본이 이라크와 2-2로 비기면서 골득실차로 본선 티켓을 차지하는 '도하의 기적'을 이뤄냈다.
12년 만에 다시 참가한 2006 독일월드컵에서도 또 다시 최종예선 탈락의 쓴 맛을 봤다. 2005년 3월 평양에서 열린 이란과 홈경기(0-2)에선 심판 판정에 격분한 관중이 난동을 부려 다음 홈 경기를 태국 방콕에서 무관중 경기로 치르는 징계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4년간 별렀던 북한은 마침내 44년 만의 두 번째 월드컵 본선행의 쾌거를 안으며 사상 첫 남북 동반 진출의 역사를 썼다.
오미현 기자 mhoh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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