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수들로부터 시작된 시국선언이 대학, 종교계, 법조계 문화계 및 의료계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총 4,500명이 넘는 인사들이 시국선언을 한 상태이다. 규모로도 건국 이후 최대다.
교수 시국선언 둘러싼 논란
보수단체의 시국선언 비판도 만만치 않다. 경제5단체는 <대국민 호소문> 을 통해 '일부' 계층의 시국선언에 우려를 표명하였으며, 한국기독교총연합회도 '일부' 종교인,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헌정질서 파괴 행위로 비판하였다. 보수단체의 성명서는 공통적으로 시국선언이 일부 좌파의 견해일 뿐이며 사회분열을 초래하고 경제회생에 악영향을 주는 행위로 규탄하고 있다. 북한의 지령에 의한 행위라는 주장도 있다. 5공 시절 공안기관의 시국보고서를 보는 듯하다. 대국민>
시국선언을 한 서울대 교수 124명은 전체 서울대 교수의 7% 정도이다. 다른 대학도 비슷한 수준이다. 따라서 90%가 넘는 절대 다수의 교수들은 시국선언에 비판적인 입장일 것이며 침묵하는 다수는 이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과연 그런가?
시국선언의 핵심 내용은 우리사회의 민주주의가 현정부 들어와서 심각히 후퇴하고 있으며 정부가 책임을 지고 자성하라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은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와 시장경쟁의 공정성이다. 이 민주주의의 두 축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연동되며 인권과 자유라는 헌법의 근본적 가치를 실현하는 수단이 된다.
시국선언은 민주적 기본질서가 현정부에 들어와 훼손되고 있다는 점에 대한 지식인 사회의 공통적 인식을 표현한 것이다. 헌법에 명문으로 규정된 사항을 정부가 유념해야 한다고 지식인들이 소리를 모은 것이 헌정질서 파괴 행위라면, 도대체 무엇이 헌정질서를 지키는 행위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보수단체의 성명대로 시국선언에는 '일부' 교수만이 참여하였다. 굳이 수치로 강조하지 않아도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소속 대학이나 교수단 전체의 의견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점은 당연하다. 원래 지식인 사회는 개인적 성향이 강해서 집단적 의사표현이 잘 되지 않는다.
특히 교수들은 각자 독립된 연구단위로서 자신만의 전문적 세계를 가지고 있어서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학과회의에도 모두 참여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현실적 이해가 걸린 교수평의회에도 참여율이 극히 저조한 편이다. 이런 교수들이 특정 사안에 대하여 같은 목소리를 냈다는 것은 수치를 떠나 사회적 의미와 파장이 적지 않다.
학교가 이념대립으로 분열하면 교육을 어떻게 수행할지 우려하는 소리도 있다. 하지만 대학 내 이념적 다양성은 학생들로 하여금 다원적 사회를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산교육이 된다. 중ㆍ고교 교사와 달리 대학교수에게 정당 가입과 정치활동이 허용되는 이유가 그런 데 있다. 더욱이 이러한 주장은 개인의 정치적 입장과 연구ㆍ교육활동을 혼동한 것이다. 전문 분야의 연구 및 강의에서 교수가 정치적 선동활동을 할 것이라는 생각은 대학사회를 몰라도 한참 모르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참여 안 하면 선언반대파?
필자는 시국선언에 참여하지 않았다. 민주주의의 위기에 동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학자의 현실참여 방식에 대한 조금 다른 생각 때문이었다. 침묵하는 다수에는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 양식 있는 사람치고 경찰버스에 의하여 숨통이 막힌 서울광장이나 땅바닥에 나뒹구는 전임 대통령의 영정을 보며 어떻게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인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제발 정부가 '소수'의 시국선언파와 침묵하는 '다수'의 반시국선언파로 세상을 구분하지 말기 바란다.
이용중 동국대 법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