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4일 이명박 대통령은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농협이 이래서는 안 된다"며 특정 조직을 거명하고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매서운 겨울한파를 무색케 만든 이 벽력같은 일갈에 거대조직 농협은 일시에 긴장감에 휩싸이고 말았다. 전임회장의 비리로 힘들어 하던 농협은 더욱 더 큰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올 6월 8일, 청와대에서는 대통령 취임 후 이례적으로 농협법 개정 공포안 서명식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여야 정치권과 농민단체들의 합의하에 이뤄낸 개혁 법안을 높이 평가했다.
뿐만 아니라, 법안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농협의 기득권 포기와 달라진 모습도 함께 치하했다. 그리고 농협이 이제는 한 단계 더 성숙된 개혁을 이뤄야 한다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이로써 농협은 그간 자신을 옥죄어 왔던 '연좌의 늪'에서 벗어나 일단 한숨 돌린 모습이다.
가락동시장 방문에서 청와대 법안서명식까지 다시 말해 농협에 대한 국가원수의 질타가 격려로 이어지기까지 거의 6개월이 걸린 셈이다.
이 기간은 농협에게 있어 그야말로 인고의 세월이었다. 언론계, 학계 및 각종 농민단체들의 책망과 비난은 매우 집요했다. 거의 10개월 넘게 끌어온 농식품부를 비롯한 각종 기관의 감사는 강한 압박으로 작용했고 임직원들은 하나같이 죄인처럼 숨죽이며 큰 폭의 급여삭감과 각종 복지축소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틈만 나면 자정(自淨)을 다짐하며 실추된 도덕성 회복에 안간힘을 썼다.
사실 돌이켜보면, 농협이 일반국민과 농민들에게 올바로 인식되지 못한 점도 상당히 많다. 1960년대만 해도 국민의 60%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면서도 보릿고개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체 국민의 4%에도 못 미치는 농민이 쌀을 생산하여 자급을 이루고도 잉여분의 처리를 걱정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국민의 먹을거리 문제를 해결한 곳이 바로 농협이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농촌에 회생의 불씨를 당겼던 새마을운동, 수입농산물에 맞서 기치를 드높였던 신토불이 운동, 이 모든 것의 고비 고비마다 농협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
또한 돈 장사에 치중한다는 비판도 들었지만 1960~70년대 춘궁기에 쌀 1가마를 빌리면 수확기에 2가마로 갚아야 했던 장리쌀과 마치 고질병과도 같았던 농촌 고리채문제 등은 농협의 상호금융을 통해 단번에 해소되었다.
현재 신용사업 수익의 전액이 직간접적으로 농민의 경제사업 지원과 복지향상 재원으로 쓰이고 있는 사실을 일반인들은 잘 모르고 있다.
누구나 인생을 살다 보면 실수도 오류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잘못을 저지르면 호통을 치거나 매질을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전임회장의 개인비리를 계기로 호된 질타를 받아온 농협은 뼈를 깎는 자세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농협은 더 이상 좌고우면할 시간이 없다. 이제 농협은 농협인 스스로 그 어느 누구의 간섭이나 지시에서 벗어나 오로지 농민의 이익과 그들이 원하는 바를 조속히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바탕위에서 개혁방향을 설정하고 실천에 매진해야 한다. 그것만이 진정으로 농협을 농민에게 되돌려주는 첫걸음이다.
박해진 경기신용보증재단 이사장ㆍ 전 농협대학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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