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의 철판 조립 공장. 요란한 굉음 속에 마치 불꽃 축제를 하듯 여기저기서 백색 섬광이 반짝인다. 컨테이너선에서 FPSO(선박형태의 부유식 원유 생산ㆍ저장ㆍ하역설비) 등 특수선까지 현대 선박은 99%가 쇳덩이다. 단순한 철판이 복잡한 구조의 설계도면에 따라 거대한 선박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용접(鎔接) 기술 때문이다.
용접은 선박 건조의 핵심 기술인 셈이다. 금속을 녹여 붙이는 용접의 기원은 4,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왕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장신구에 납 용접이 사용됐다. 물론 오늘날의 전기 자극을 이용한 아크 용접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단순한 용접이다.
전기의 '플러스'와 '마이너스' 극이 부딪칠 때 발생하는 고열을 이용해 철판을 붙이는 현재의 용접 기술은 20세기 초부터 사용됐다. 장태원 삼성중공업 산업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용접기술사)은 "용접 현상 자체는 어찌 보면 단순하지만, 이를 활용하는 기술은 매우 빠르게 발전해왔다"고 설명했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철판 조립이 사람에 의해 이뤄졌다. 금속(철ㆍ스테인리스ㆍ구리 등)과 플럭스(산소 침투 방지 재료)가 결합된 용접봉을 철판 사이에서 녹여 붙였는데, 선박의 안정성이 용접공에 의해 좌지우지되다 보니 근로자의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용접의 중요성을 여실히 드러내는 사례 하나.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전시 물자를 안전하게 수송할 7,185톤급 중형 선박 4,700여 척을 용접 공법으로 건조해 진수시켰다. 하지만 1942~46년 진수된 이들 선박 중 1,200여 척이 선체가 앞뒤로 동강 나 침몰하는 등 '사용 불능' 상태가 됐다. 허술한 용접 기술 때문이었다.
그러면 조선강국 코리아의 용접 능력은 어떨까. 한 마디로 세계 최고다. 기술면에서는 격년제로 열리는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2007년까지 5연패를 자랑한다. 올해 8월 캐나다에서 열리는 대회에는 삼성중공업 '용접맨'이 출전, '코리아 6연패' 금자탑에 도전한다. 조성인 삼성중공업 기술연수원 차장은 "5연패가 증명하듯 손 끝에서 이뤄지는 용접 기술은 한국이 최고"라고 자랑했다.
생산성 측면에서도 놀라운 발전을 일궈오고 있다. 대량의 철판을 빠른 시간 안에 붙여 선박을 완성해야 하는 현대 조선산업의 특성상, '용접 로봇'의 활동은 눈부시다. 바닥과 벽을 잇는 '모서리 로봇'부터 LNG 창고의 벽면에서 스테인리스 판넬을 붙이는 '스파이더 로봇'까지 다양하다. 삼성중공업은 전체 용접의 65%를 자동화로 해결한다. 3~4배 이상 높아진 생산 효율성은 원가절감에 따른 수익성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자동화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역시 최고 기술자는 사람이다. 삼성중공업 현장 근로자 1만5,000여명 중 용접 인력은 7,000여명. 고난도 용접은 여전히 사람 몫이고, 로봇이 용접한 부분 역시 숙련공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이 자체 연구소를 두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자신의 손으로 120여 척의 선박을 건조했다는 고경률 삼성중공업 선행1과 반장은 "선박 건조에는 모든 공정이 중요하지만, 용접이야말로 한국의 조선 경쟁력을 세계 최고로 끌어올린 핵심 부문"이라고 자부했다.
거제=박기수 기자 bless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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