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에서 지난 10일(현지시간)부터 열린 제11회 모스크바 국제 발레 콩쿠르에서 시니어부(19세 이상) 듀엣으로 참가한 국립발레단의 김리회(22), 이동훈(23)이 19일 입상자 발표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역대 이 콩쿠르에서 한국인이 받은 상 중 최고 상이다.
주니어부에서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재학 중인 채지영(17)과 김기민(17)이 듀엣으로 나와 김기민이 금상 없는 은상을 받았다. 이 콩쿠르 주니어부에서 한국인이 입상한 것은 처음이다. 모스크바 발레 콩쿠르는 솔로와 듀엣 두 종목이 있는데, 듀엣 한 팀으로 나와도 남자, 여자를 따로 채점해 시상한다.
4년마다 열려 '발레 올림픽'으로 불리는 모스크바 발레 콩쿠르는 바르나, USA잭슨 콩쿠르와 더불어 세계 3대 발레 콩쿠르로 꼽힌다. 한국인이 본상을 받기는 1997년 김용걸(동상)이 최초였고, 2001년 김주원은 동상을 받았다. 김용걸의 당시 파트너 배주윤은 인기상과 특별상, 김주원의 파트너 이원국은 베스트 파트너상을 받았다.
시니어부 103명, 주니어부 38명이 참가한 올해는 3라운드 결선에 각각 21명이 진출해 치열한 경쟁을 펼쳤는데, 특히 시니어부의 남자 무용수들은 대단한 실력으로 관객을 열광시켰다.
18일 열린 결선에서 김리회ㆍ이동훈 커플은 '고집쟁이딸' 파드되(2인무)를 선보였다. 이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런 작품에서 두 사람은 춤 못지않게 뛰어난 연기로 관객을 미소짓게 했다.
국립발레단의 드미솔리스트(군무를 하면서 솔로도 하는 무용수)인 두 사람은 떠오르는 샛별이다. 김리회는 입단 6개월 만인 2006년 연말 '호두까기 인형' 전막 공연에서 최연소로 주역 데뷔를 했다.
2008년 9월 입단한 이동훈은 한 달 뒤 '지젤' 중 '농부 파드되'로 주목받기 시작해 그 해 연말 김리회와 짝을 이룬 '호두까기 인형'으로 전막 공연 주역이 됐다. 이동훈은 비보이에서 발레로 진로를 바꾼 이색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길거리 배틀을 즐기던 중학생 시절, 못하는 동작이 없어 비보이 선배들에게 '괴물'로 불렸을 정도. 발레는 부모님과 체육 선생님의 권유로 중3 때 시작했다.
두 사람에게 이번 콩쿠르는 보람도 크지만 고된 도전이었다고 한다. "3라운드까지 가는 동안 매일 밤 늦게까지 연습이 아니면 공연을 했는데, 하도 힘들어서 저희 둘 다 몸무게가 3~4kg씩 빠졌어요. 리회는 없던 다크써클까지 생겼고, 저는 매일 밤 같은 동작만 반복하는 악몽을 꿨죠. 아, 액땜이란 액땜은 다 한 것 같아요. 그래도 이번 콩쿠르를 하면서 둘이 호흡이 척척 맞는 파트너가 된 건 아주 기쁜 소득이에요."(이동훈)
"무엇보다 볼쇼이극장의 경사진 무대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어요. 물병을 눕혀 놓으면 아래로 굴러갈 정도로 경사가 심해서 똑바로 서있는 것도 힘들었으니까요. 어떻게 하면 제대로 춤출 수 있을지, 발 디딤새부터 하나하나 오빠와 열심히 연구했죠. 매일 밤 서로 지친 근육을 마사지해주면서 '우린 잘 할 거야, 널 믿어' 하고 서로 격려했어요."(김리회)
주니어 듀엣 부문 은상을 받은 김기민은 "콩쿠르 일정이 워낙 빡빡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고생했지만, 다른 참가자들의 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고 했다.
이번 콩쿠르의 심사위원장은 20세기 후반 러시아 발레의 대명사로 통하는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맡았다. 그는 "한국 무용수들의 수준이 테크닉과 표현에서 모두 날로 급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높이 평가했다.
모스크바=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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