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해 봤어? 안 해봤으면 말을 마러" 비정규직으로 있는 지인이 애환을 호소하며 한 말이다. 비정규직은 소득 양극화의 핵심 원인이다. 이에 대한 해답이 없으면 사회적 안정성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비정규직 사용기간을 2년으로 규정한 관련 법조항의 시행유예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한나라당은 법 시행 2년이 되는 7월에 대규모 해고사태가 일어날 것이므로 유예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민주당은 현 조항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촉진할 것이므로 유예해서는 안 된다고 맞선다.
비정규직 대상 여론조사부터
이 문제의 해결방안은 무엇인가? 나아가 비정규직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은 무엇인가?
현재 국회는 어떻게든 7월 전에 유예여부를 결정해야 할 상황에 있다. 이를 위해 비정규직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를 제안한다. 여야 모두 각자의 방안이 비정규직에게 더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갑론을박할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에게 어느 쪽을 선호하는지 묻는 것이 쉽고 확실하다.
이는 갈등관리 기법상 '공동의 사실확인 (joint fact-finding)'에 해당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사실확인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여야합의가 더 중요한 미디어법 문제와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양당이 합의에 의해 조사기관, 설문내용 및 대상을 결정한 후 조속히 조사를 시행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일단 눈 앞의 쟁점은 이렇게 해결한다고 해도 비정규직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법 적용을 유예하더라도 비정규직을 고용하고자 하는 기업의 수요가 살아 있고, 실업상태보다는 비정규직이 낫다는 노동자의 공급이 있는 한 비정규직 문제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논의되는 한시적 정규직 전환 지원금도 미봉책일 뿐이다.
노동계에서는 비정규직 사용요건을 강화하여 함부로 비정규직을 쓸 수 없도록 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기업들은 기존의 비정규직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만 전환하고 나머지는 기존인력의 근로시간을 늘리거나 업무를 효율화하는 방안으로 해결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고용이 축소되는 것이다. 해고될 운명에 처한 비정규직 입장에서는 차라리 비정규직으로 고용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와 고용유지는 모두 중요하다.
따라서 고용을 유지하면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굳이 비정규직을 쓰고 싶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일부에서는 정규직도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하면 굳이 비정규직을 선호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모든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며 또 바람직한지도 의문이다. 노조가 없는 중소기업의 정규직은 어차피 고용의 안정성이 없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많은 중소기업은 왜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을 쓰면서 2년마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신참들로 바꾸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정규직은 고용기간이 늘어날수록 생산성과 관계없이 임금을 올려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규직은 시간이 지날수록 생산성에 비해 높은 임금을 받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규직 임금이 생산성에 부합하도록 임금체계가 개편되어야 한다. 물론 근속연수가 높아질수록 생산성도 높아진다면 임금은 올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생산성과 무관하게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한 비정규직 확산을 막을 수 없다.
생산성 중심 임금체계 개편
노사정이 진정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임금체계의 전면개편을 위한 논의에 동참해야 한다. 기존의 정규직에는 임금 피크제 도입을 가속화 하고 새로이 고용되는 정규직에 대해서는 생산성 중심의 임금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이를 논의하기 위한 노사정 협의를 서둘러야 한다.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미래전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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