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혁명' 열기가 서울 월드컵 경기장까지 왔다. 그제 월드컵 최종예선전에서 이란 선수 몇몇이 손목에 녹색 띠를 차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마다비키아를 비롯한 이란 선수들은 12일 실시된 대선에서 패한 야당 후보 무사비 전 총리 지지세력의 부정선거 항의시위에 동참하는 뜻으로 그의 상징색 띠를 차고 나왔다. 엄격한 권위주의 국가의 대표선수로는 용납되지 않을 행동이다. FIFA 규정에도 어긋날 듯했다. 그 때문인지 후반전에는 녹색 띠를 볼 수 없었다.
■수도 테헤란에서만 수십만 명이 참여한 군중시위는 누그러진 모양이다. 그러나 무사비는 재선거를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을 다짐했다. 서구 언론은 체제균열 양상에 비춰 1979년 회교 혁명에 이어 다시 혁명 상황이 도래했다고 진단한다. 터무니없는 평가는 아닐지 모른다.
다만 이란에 비우호적인 서구 언론의 진단을 곧이곧대로 믿을 것은 아니다. 늘 객관적 시각으로 살펴야 한다. 현직 대통령 아마디네자드(53)를 기득권을 대표하는 강경보수파, 무사비 전 총리(68)와 그를 지원한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75)을 온건개혁파로 규정하는 것부터 따져볼 만하다.
■아마디네자드는 혁명수비대 출신의 회교 원칙주의자이니 보수파로 볼 수 있다. 화가이자 건축가인 무사비는 언뜻 온건개혁파일 수 있다. 라프산자니는 최고위 성직자이지만 시장주의자이니 서구 기준에는 개혁파다. 그러나 라프산자니와 무사비가 회교혁명 1세대, 아마디네자드는 혁명 2세대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얘기가 달라진다. 81~89년 총리를 지낸 무사비는 회교혁명 지도자 호메이니가 선택한 인물이다. 89~97년 대통령이었던 라프산자니는 석유이권과 무기 거래에 개입해 막대한 부를 축적, 포브스 지의 세계 갑부 리스트에 오른 부패의 상징이다.
■2005년 아마디네자드의 집권은 성직자들의 부패와 권위주의 행태 등 '회교혁명의 타락'에 낙담한 민중의 선택이다. 서구는 그를 포퓰리스트로 보지만, 그는 석유 수입으로 빈곤층과 서민을 집중 지원했다. 여기에 반발한 성직자와 지식인, 도시 중상류층 등 기득권 세력과 라프산자니는 유약한 무사비를 앞세워 아마디네자드 축출을 시도했다. 백중지세 선거에서 그가 압승한 개표결과는 조작 의혹이 짙다. 그러나 서민 대중과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굳게 지지하는 그를 민중시위로 몰아내는 '녹색혁명'은 환상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서구의 잣대에 마냥 기댈 게 아니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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