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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희망이 곁에 있습니다] <57> 세상의 소리 찾은 6살 유혜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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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나눔-희망이 곁에 있습니다] <57> 세상의 소리 찾은 6살 유혜원양

입력
2009.06.23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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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이가 태어나서 처음 만난 세상은 너무나 고요했다. 그의 세계에 '소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청각 장애를 안고 태어난 유혜원(6)양의 힘든 삶은 그렇게 시작됐다.

부모는 혜원이에게 청각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태어나서 100일이 지나도록 까맣게 몰랐다. 아버지 유병우(36)씨와 어머니 윤주희(33)씨도 혜원이처럼 소리를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혜원이 언니 혜숙(7)이도 마찬가지로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 장애아다.

자신들에게 장애가 있긴 하지만,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혜원이만큼은 별 이상이 없으리라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런데 신생아를 위한 각종 진단을 위해 병원에 들렀다가 청력 검사에서 혜원이가 100㏈이 넘는 요란한 소리도 못 듣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면 불편한 정도를 넘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다.

실제 혜원이가 도로에 나갔다가 대형 트럭이 달려오는 소리(90㏈)나 자동차 경적음(110㏈)을 듣지 못해 아찔한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부모나 언니가 옆에 있어도 소용없었다. 혜원이와 똑같은 처지이기 때문이다.

할머니 백말순(62)씨는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아이들을 경기 안산의 부모집에서 서울 성수동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다. 비록 단칸 전세방이었지만, "소리를 듣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키우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소리를 듣지 못하는 아이들과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혜원이 부모와는 손짓 발짓과 글씨를 써서 대화했지만 아이들은 그런 방식의 의사 소통도 불가능했다.

백씨는 "불러도 못 들으니 몸도 힘들고 답답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더욱이 소리를 못 듣고 말을 못하니 친구들을 사귈 수 없어 또래들과의 생활이 불가능했다. 물론 학교 진학도 힘들었다.

"괜히 아이들을 데려왔나 보다" 낙심하던 백씨에게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우연히 병원에서 KT가 청각장애우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KT 지원 프로그램은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달팽이관 수술 후 보청기를 제공하는 인공와우 수술이다. 보청기를 포함한 수술 비용이 1,500만원에 달해, 서민들이 쉽게 엄두를 내기 힘든 상황이다. 혜원이는 2007년 KT의 도움으로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지난해 언어 훈련을 위해 버스를 타고 서울 강남의 한국와우센터를 다니던 중 보청기를 분실한 것이다. 보청기 가격은 800만원. 혜원이 부모 입장에선 마련하기가 쉽지 않은 거액이었다.

한국와우센터에서 이 소식을 전해들은 KT는 직원들이 선뜻 돈을 걷어 혜원이의 보청기를 다시 마련해줬다. 백씨는 "한 번도 힘든 데 두 번씩이나 도와줘 너무 고맙다"며 감격스러워 했다.

KT도 혜원이와 관계를 맺으며 배운 게 있다. 청각장애우는 단발성이 아닌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청각장애우 지원 프로그램을 바꾸기로 했다. KT 사회공헌팀 강보배씨는 "청각장애우가 사용하는 보청기의 수명이 다하면 추가로 교체해주고, 언어 훈련 등 재활 치료 지원 기간도 1년에서 2년으로 늘렸다"고 설명했다.

요즘 혜원이는 말을 배우기 위해 할머니와 언니의 손을 잡고 한국와우센터를 열심히 다니고 있다. 꾸준한 훈련 덕에 발음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원하는 단어를 말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혜원이의 지도를 맡은 한국와우센터 김혜숙 교사는 "이제 혜원이는 못 듣는 소리가 없다"며 "최근에는 간단한 문장을 만들 수 있을 만큼 언어 훈련도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학교에 입학하려면 아직도 꾸준한 치료가 필요하다. 사실상 사회적 연령은 말문이 트이면서 시작된다. 그런 점에서 혜원이의 정신 연령은 이제 겨우 두 살인 셈이다. 김 교사는 "혜원이의 훈련이 지속되면 정상인처럼 말할 수 있다"며 "학교에 가서도 꾸준한 언어 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곤궁한 생활이다. 백씨는 다리가 아파 일을 할 수 없다. 혜원이 부모가 다달이 보내주는 60만원이 생활비의 전부다. 부모는 안산 공장에 취직해 월 200만원 정도 벌지만, 정부의 서민 지원 및 장애인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백씨는 "3,500만원이 넘는 전세에 살거나 월 소득 150만원이 넘으면 장애인도 지원 혜택을 못 받는다"며 "전세금도 12개월로 나눠 소득으로 계산하는데,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고 불만을 내비쳤다.

백씨를 특히 안타깝게 하는 것은 혜숙ㆍ혜원 자매의 언어재활 치료가 의료보험 대상에서 제외돼 있는 점이다. 백씨는 "언어재활 치료가 1대 1 상담 식으로 이뤄지다 보니 정부에서는 개인교습에 해당하는 학원 과외로 취급해 의료보험을 적용하지 않는다"며 "차라리 병원이 언어재활 치료를 맡아서 의료보험 적용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백씨가 당초 혜원이의 수술을 반대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백씨는 "수술을 받은 뒤에도 꾸준히 재활 치료를 해야 하는데, 못사는 형편에 가당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물론 지금은 다르다. "손녀들이 말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건강하게 자라서 학교도 가고 친구들도 사귀었으면 좋겠어요." 혜원이의 환한 미소를 응시하는 그의 눈가에 작은 이슬들이 맺혔다.

● KT의 청각장애우 지원

KT는 2003년부터 저소득층 청각장애우의 소리 찾기를 지원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우들의 달팽이관(와우) 수술을 해주는 인공와우 수술과 재활 치료, 디지털 보청기 지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인공와우 수술이란 달팽이관의 손상으로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달팽이관 기능을 대신할 수 있는 전자장치인 인공 와우를 몸에 이식한 뒤 이를 통해 청력 신경을 자극해 소리를 듣게 해준다. 이 경우 단순히 수술로 치료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청각 재활 및 언어 훈련이 함께 실시된다.

KT는 인공와우 수술비 전액과 연간 400만원의 언어 훈련 비용을 지원한다. 이를 위해 KT의 지원 취지에 동감하는 서울대병원, 연세의료원, 삼성서울병원 등 전국 14개 병원과 제휴해 인공 와우 수술을 진행하고 있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KT의 도움으로 인공 와우 수술을 받은 청각장애우는 모두 109명.

인공 와우 수술을 받더라도 일반인과 똑 같은 소리를 듣지는 못한다. 때문에 소리와 잡음을 구분하고 사람들의 말을 인식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KT는 2003년부터 언어 훈련을 지원하고 있으며 올해부터 재활치료 기간을 2년으로 연장했다.

디지털 보청기 지원 프로그램은 청력이 약한 만 18세 미만 청소년들에게 보청기를 지원하는 사업. 기존에 보청기를 사용한 청소년들도 올해부터 지원 대상에 포함됐다. 보청기 역시 기기인 만큼 수명이 다하면 교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KT가 디지털 보청기를 지원한 청각장애 청소년은 총 115명이다.

이효자 국립서울농학교 교장은 "청각장애우들은 어릴 때부터 개념 형성이 어려워 장애유형 가운데 가장 지능이 낮다"며 "청각장애우들의 평균 학습성취도가 초등학교 2학년 수준을 넘기 어려운 '열 살의 벽'이라는 게 있어 여러모로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규남 KT 경영홍보담당 상무는 "요즘처럼 경제가 어려울 때 일수록 사회적 책임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며 "KT와 인연을 맺은 청각장애우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걱정없이 자랄 수 있도록 계속 지원하겠다"고 다짐했다.

최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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