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어둠이 내린 삼청동 골목길을 걸을 때였다. 비좁은 인도 위를 한 줄로 걸어가는데 맨앞에 가던 남자 선배 하나가 별안간 걸음을 멈추더니 골목 안쪽의 가게를 기웃거렸다. 저기가 바로 배우 도금봉씨가 하는 가게라고 했다. 자신은 벌써 가봤다는 의기양양함이 잔뜩 밴 목소리였다. 바로 뒤의 선배도 반색하더니 둘은 잠깐 나란히 서서 작은 한옥 대문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사춘기 시절 그들에게 도금봉이라는 배우는 지금의 섹시 스타 누구누구와 비길 게 아니었다고, 어린 마음에도 그만 나오면 그렇게 섹시할 수가 없었다고 둘은 소곤거렸다. 김지미나 윤정희라면 모를까, 도금봉이라니. 도금봉, 하면 '월하의 공동묘지'라는 공포영화가 먼저 떠오르는 나로서는 도대체 알 수 없는 게 남자들의 심리란 생각뿐이었다. 도금봉씨는 악녀 역할을 맡았다.
어린 마음에도 얼마나 얄미웠는지 죄값을 받는 장면에서는 무서워 뒤집어쓴 이불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환호성을 질렀다. 그 뒤로 삼청동 길을 걸을 때면 선배들이 멈춰섰던 골목길 안을 힐끗거리면서 여전히 알 수 없는 남자들에 대해 생각했다. 한번도 만난 적 없지만 늘 그 한옥 문 안에 도금봉씨가 있을 거라 믿었기에 그의 쓸쓸한 말년과 죽음 소식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그날 골목을 기웃거리던 선배 둘도 무척 쓸쓸했을 것이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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