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프랑스를 사랑하는 이유는 패션의 중심이라든지 세느강의 낭만이나 에펠탑의 화려함보다 어쩌면 줄리엣 비노쉬라는 배우에게서 느끼는 프랑스의 감성이 아니었을까 싶다.
얼마 전 비노쉬는 무용수로서 첫 작품인 의 무용공연과 같은 시기에 개봉한 <여름의 조각들> 의 시사회 참석을 위해 지난 3월에 7박 8일간의 일정으로 처음 서울을 방문했다. 여름의>
무용수로 변신한 줄리엣 비노쉬는 를 통해 40대 중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지치지 않는 열정과 아름다움, 그리고 춤을 통해 연기하는 뛰어난 예술가로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LG아트센터에서 열린 공연은 영국의 안무가 아크라캄이 맡았고 도쿄를 거쳐 서울, 상하이를 도는 세계 투어 공연의 일환이었다. 파리에서 컬렉션 준비로 한창 정신 없을 무렵 그녀의 홍보대행사로부터 방한 기간 중 디자이너 이상봉과의 만남을 주선해도 되겠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나는 흔쾌히 승낙을 했다.
비노쉬는 개인적으로 내게 인연이 깊은 배우다. <37.2>라는 영화는 나에게 엄청난 영감과 에너지를 불어 넣었던 영화였다. 가냘픈 배우가 이끌어가는 충격적인 스토리와 영상은 나를 빠져들게 만들었고 내 머리 속에 있었던 사랑이라는 진부한 관념들이 일순간에 깨져나가는 카타르시스를 맛봤다.
이후에 나온 <세 가지 색: 블루> <퐁네프의 연인들> <잉글리시 페이션트> <프라하의 봄> <데미지> 등 비노쉬가 출연한 영화는 나에게 언제나 흥분을 안겨 주었다. 데미지> 프라하의> 잉글리시> 퐁네프의> 세>
그 중 <블루> 는 컬렉션 테마로 사용하기도 했고, 그 영화에 매료된 나는 컬렉션 직후 어느 패션전문 방송에서 그 영화를 틀어놓고 인터뷰한 적도 있을 만큼 그녀의 연기와 영화에 푹 빠졌다. 비노쉬는 겉으로 드러나는 연기가 아니라 잔잔한 미소 속에 가두고 있는 폭발적인 자아,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아름다움에 난 깊이 빠져들었다. 블루>
디자이너로서 그녀를 색으로 표현한다면 검정과 레드 그리고 블루 컬러가 떠오른다. 검정은 파리지엔느가 가장 즐기는 색상이기도 하지만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절제를, 레드는 열정, 블루는 냉정을 의미한다. 나는 그녀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그녀에게 한글의상을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내가 아는 그녀는 튀는 것보다 자기 것을 지키는 스타일로 어디든 편하게 입고 나갈 수 있도록 블루컬러의 가벼운 트렌치코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한글 서체가 장식된 붉은색 쉬폰 드레스와 김남주 시인의 시가 인쇄된 가죽재킷을 만들었다. 재킷의 안감에는 신윤복의 그림 미인도를 넣어 한국여인의 아름다움을 안겨주고 싶었다.
랑콤 레네르지 라인의 전속모델이기도 한 비노쉬는 로레알 코리아의 지사장인 클라우스 파스벤더와 함께 선릉에 있는 내 부티크를 직접 찾아왔다. 비노쉬는 파리지엔느답게 심플한 검정 슈트 차림에 흰색 셔츠 깃을 올리고 운동화를 신은 채 매장에 들어섰다. 자연스런 헤어스타일과 꾸미지 않은 화장은 기존에 봐온 스타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고 검정 재킷에 받쳐 입은 흰색셔츠에서는 그녀의 자존심과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었다.
막상 눈앞에 마주선 그녀 앞에서 당황하는 나에게 먼저 다가와 안아주며 인사하는 모습에서 세계적인 스타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의 여유 있고 자신감 있는 모습에서 여성이 보여 줄 수 있는 최고의 카리스마가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녀를 위해 매장에 꽃과 한과 그리고 차를 준비했다. 그녀는 운동화를 즐겨 신느냐는 질문에 공연때문에 발이 부어서 신고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왜 무용을 하게 되었는지 기자가 질문하자 그녀는 내면에 있는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즐겼는데 어느 날 아크라 캄의 공연을 보고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고, 그것이 계기가 돼 무용을 시작했다고 한다.
비노쉬는 자신을 위해 준비한 한글이 들어간 붉은 드레스를 쳐다보며 흘림체로 쓰여 진 한글이 자신에게는 매우 로맨틱하게 보이고, 한국의 전통이 패션을 통해 모던하게 표현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를 위한 선물이라는 말에 매우 감사해 했다.
함께한 로레알 코리아의 사장인 파스벤더씨도 오랜 한국 생활을 바탕으로 그녀에게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한 한국의 디자인과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설명해주는 한편, 나와 함께 프랑스 여성의 미와 프렌치 터치에 대한 의견도 나누면서 이날의 만남을 더욱 의미 있게 했다.
아름다움에 대해 비노쉬는 '진실한 아름다움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나이와 함께 찾아오는 아름다움이 있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것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세월의 흔적은 지울 수 없지만 시간이 더할수록 그녀가 더 아름다워지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는 캄보디아 어린이들에 대한 후원과 술 담배 커피를 전혀 하지 않고 유기농을 즐긴다는 얘기, 그림에도 관심이 있어 그림과 무용을 접목하는 작업도 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나눴다.
그녀의 철저한 자기관리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찾아가는 모습이 내게는 더 아름다웠다. 국내의 많은 스타들과 젊은이들은 인형 같은 아름다움만을 추구하고 있다. 비노쉬의 내면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은 그 어떤 아름다움보다 가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녀가 순회공연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가면 10월에 있을 컬렉션에 손수 적은 초대장을 보낼 예정이다. 다음 컬렉션에는 무대에 올릴 옷과 함께 그녀에게 전할 꽃다발도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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