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출신 작가들이 '이화'를 추억하는 소설집을 낸다.
우애령(64), 이청해(61), 한정희(59), 김향숙(58), 정미경(49), 권지예(49), 김다은(48), 함정임(45), 배수아(44), 고은주(42), 오현종(36), 권리(30)씨 등 이대 출신 작가 12명의 단편을 모은 테마소설집 <이화, 번지점프를 하다> 가 내주 출간된다. 2007년 6월 기획돼 2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이화여대출판부의 창립 60주년을 기념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화,>
1960년대말 학교를 다닌 작가부터 1990년대 후반 학번 작가까지 이들이 체험한 '이화'는 모두 다르다. 수록작들도 이화라는 큰 틀을 공유하지만 '청춘' '불안감' '성장통' 등의 하위주제들을 품고 있다. 작품들은 다른 듯하면서도 닮은 묘한 매력을 풍기며 열두 가지 색깔로 분광(分光)된다.
정미경씨의 '번지점프를 하다'는 가진 것이라고는 젊은 육체와 자존심밖에 없는 대학생 남자친구 강, 부유하지만 냉소적인 유부남 갤러리 사장 박 사이에서 미묘한 감정의 줄다리기를 경험하는 이대생이 주인공이다.
아직 비루하고 속악한 현실을 경험하지 않은 순수한 젊은이를 상징하는 강, 가지지 않은 자의 낙천주의를 경계하는 회의적인 기성세대를 상징하는 박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사회 속으로 들어가는 입사(入社)의 성장통을 앓는 주인공의 심리가 섬세하게 묘사돼있다.
오현종씨의 'K의 어머니와 면회를 갔다'는 이상과 현실 어느쪽에도 발붙이지 못하는 청춘의 불안감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화자는 군에 입대한 남자친구의 어머니와 함께 면회를 다녀왔던 대학생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는 30대 여성 소설가다.
애정결핍에 시달렸던 남자친구 K가 당시 왜 자꾸 자신과 거리를 두려는지 잘 알 수 없었던 화자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K와 나는 각자 무엇에선가 달아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나는 K를 원했지만 한편으론 원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라며 먹먹한 상실감에 사로잡힌다.
김다은씨의 '가장 전망이 좋은 집'에서는 이대 창립자인 스크랜턴 여사의 혼백이 19세기의 '리화학당'과 21세기의 이화여대를 떠돌아다닌다. 창립자의 혼백은 천대받는 여성에 대한 교육ㆍ계몽기관으로 출발했던 이 학교의 초기 역사부터 한국 여성의 자기주체성 확립에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는 이대의 현재상까지 100년이 넘는 학교의 역사를 훑는다.
우애령씨의 '선유실리'는 데모와 최루탄과 휴교가 일상사였던 1970년대가 배경이다. 농촌계몽활동에 참가한 이대생과 이 학생에게 남모르는 연정을 품는 농촌교회 목사와의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을 담담하게 소묘했다.
소설집 출간에 맞춰 12명의 작가들은 24일 이대 캠퍼스에서 출간기념회를 가질 예정이다. 정미경씨는 "학교를 다녔던 1980년대에는 이대가 외부인들에게 비춰지는 이미지와, 학교 바깥의 엄혹한 정치적 현실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며 "하지만 졸업을 한 뒤 학교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다양한 개성의 발휘'라는, 모교가 준 긍정의 유산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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