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서북부 500만 주민들의 발 노릇을 했던 경의선 통근열차가 추억속으로 사라진다. 매일 오전 5시50분부터 하루 38회 운행하던 통근열차가 다음달 1일이면 최신형 전철에 밀려 '옷을 벗고' 퇴역하게 된다.
16일 오전 9시 50분 서울역 6번 승강장. 경의선 통근열차의 출발점인 이곳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승객 최모(67) 할머니는 "이제 정말 덜컹 거리는 기차를 타지 못하는 거냐"며 아쉬워했다.
기관사 김병용(47)씨도 섭섭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 "얼마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안타깝고 서운하네요."
용산기관차 승무사업소 김 기관사는 30일 새벽 5시50분 문산발 서울행 첫차 2002열차를 운행하게 된다. 운행 마지막 날 첫 출근 손님을 모시게 되는 셈이다.
1987년 부기관사로 열차와 인연을 맺은 뒤 22년간 무사고로 지구에서 달까지 왕복거리에 조금 못미치는 62만㎞를 주행했다. 이 가운데 통근열차를 운행한 거리는 3분의 1에 불과하지만 가장 애착이 가고 정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운행시간이 1시간 정도 소요되지만 서민들과 행락객들이 늘 북적거려 고향 집과 같은 분위기였다"며 "87년 처음 경의선을 운행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마지막 날 첫 열차를 운행하게 돼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가 동행한 통근열차는 지나는 역사마다 손님맞이에 한창이었다. 능곡 백마 금촌 문산역 등 추억 속에 한자리를 차지했던 역사는 모두 헐리고 근처에 신축역사가 마무리 단계다. 여름철이면 개구리 울음소리가 인상적인 강매역은 인근 행신역과의 역간 거리가 짧아 아예 사라지지만 역사 중간 중간에 건널목은 그대로 남아 있어 옛 정취를 느끼게 했다.
월롱역을 지난 열차가 파주역에 가까워지자 온통 푸른 논밭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김 기관사는 "옥수수 등 농산물을 팔러 가는 아주머니와 휴가를 나오거나 귀대하는 장병, 서울로 통학하는 대학생, 주말에는 기차여행을 즐기려는 나들이 객들로 붐볐다"며 "통근열차에는 서민들의 애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회상했다.
경의선이 개통된 때는 1906년. 서울 용산에서 신의주까지 518.5㎞를 운행하다가 한국전쟁으로 허리가 끊기면서 51년부터는 서울~문산 46㎞로 짧아졌다. 현재는 2001년부터 임진강까지 52㎞가 연결돼 있다.
열차 자체는 67년부터 석탄과 목판을 때는 증기기관차 대신 경유를 연료로 쓰는 디젤기관차로 바뀌었다. 자가용도 드물고 버스도 잘 오지않던 그 시절에는 시속 80㎞의 초특급 열차였다. 1970~80년대는 서울로 학교와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이 주로 타면서 통근열차라는 애칭이 붙으며 서민의 발로 자리 잡았다.
90년대 승용차가 늘어나고 도로 사정이 좋아지면서 연간 승객은 줄었지만 여전히 500만명 선을 유지하고 있다. 이후 2004년 4월 통일호 운행이 전국적으로 전면 폐지된 후에도 통일호 열차 5량을 연결해 공식적으로 '통근열차'라는 열차 등급이 붙여졌다.
그러나 이 달 30일을 마지막으로 통근열차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대신 경의선 복선전철 1단계 구간인 서울 디지털미디어시티역(DMC역ㆍ성산)~파주 문산역 38.8㎞ 구간이 개통되면서 미끈하게 빠진 최신형 전철이 투입된다. 나머지 서울 DMC역과 용산역 7.5㎞ 구간은 2012년 말에 완전 개통된다.
운행 시간도 문산에서 서울역까지 현재 1시간 16분 정도 걸리지만 다음달부터는 급행 열차 기준으로 52분만에 주파하게 된다. 배차 간격도 10~13분으로 대폭 단축된다.
하지만 전철이 다니지 않는 문산~임진강역 6㎞ 구간은 여전히 통근열차가 승객들을 실어 나르게 된다.
김 기관사는 "빠르고 쾌적한 최신형 전철의 등장으로 이용객 입장에서는 시간이나 서비스 등 모든 면에서 훨씬 편리해질 것"이라며 "열차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만 승객들의 마음속에는 추억으로 영원히 간직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성호 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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