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남의 얼굴 빤히 쳐다보느냐고 시비를 거는 이 때문에 혼쭐이 난 적 있다. 눈이 나빠서라고 해명해도 막무가내였다. 그 뒤로는 지하철이나 버스에 타면 책부터 펼쳐들거나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사람들의 발목 아래, 또다른 세상이 있었다. 이목구비가 제각각이듯 발과 신발도 다 달랐다. 우선 트렌드가 보인다. 밑창 얇은 운동화와 굽이 10센티 이상인 '킬힐' 샌들이 대세이다. 굽이 닳은 모양으로 그 사람의 걸음걸이도 추측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을 만날 때도 저절로 신발에 눈이 간다. 며칠 전 두 개의 구두를 보았다. 하나는 소설가 송기원 선생의 구두였다. 길이 잘 든 구두 같았다. 그렇게 되기까지 걸린 시간만큼 조금은 낡고 잔주름이 졌다. 먼 길 행차에 손수 구두를 닦은 듯했다. 전문가가 한 물광, 불광 구두처럼 번쩍이는 대신 수수하고 단정했다. 또 한 사람의 구두는 지하철 역 에스컬레이터를 두 계단 앞서 올라가던 이의 구두였다.
다른 곳은 새것처럼 멀쩡한데 굽만 바깥 쪽으로 심하게 닳아 있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린 그는 한손에 두툼한 서류 봉투를 들고 쩔뚝이면서 걸어갔다. 걸을 때마다 조금 큰 듯한 구두 밖으로 발꿈치가 덩달아 딸려 올라왔다. 그가 입고 있는 양복도 조금 컸다. 옷도 신발도 기성 치수와 딱 맞지 않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었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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