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 분단 이래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백화원 영빈관에서 3시간50분 간 머리를 맞댄 끝에 6ㆍ15남북공동선언을 함께 썼다. 남북 관계가 증오와 대결에서 화해와 협력으로 큰 걸음을 떼는 순간이었다.
이후 남북 관계는 비약적인 양적 성장을 이뤘다. 경제 협력과 사회ㆍ문화 교류 활성화, 남북 당국 간 회동 정례화 등이 그 성과였다. 어느새 남북 간 왕래는 역사적 이벤트보다는 자연스러운 일상에 가까워졌다.
1989년부터 99년까지 11년 간 남북 왕래 총인원은 1만1,958명. 그러나 2000년 이후 남북 왕래의 물꼬가 터졌다. 2000년 7,986명, 2002년 1만3,877명, 2004년 2만6,534명, 2006년 10만1,708명, 2008년 18만6,775명 등으로 왕래 인원이 급증했다. 2000~2008년도 남북 교역액(89억1,300만달러)은 89~99년도 교역액(21억200만달러)의 4배를 웃돌았고, 2000년 이후 188만8,067명이 금강산과 개성지역으로 관광을 다녀 왔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6ㆍ15선언은 급속도로 힘을 잃었다. 생명력 넘치던 남북 관계는 전원 코드를 뽑은 듯 갑자기 멈춰 섰다. 6ㆍ15선언 이후 이산가족 1만9,960명이 상봉의 기쁨을 나눴지만 2008년 이후엔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2000~2007년 모두 238차례(연 평균 약30차례)의 남북 회담이 열렸으나 지난 해엔 6건에 그쳤다.
올해 들어선 개성공단 관련 실무 회담이 두 차례 열린 것이 전부다. 2000년 이후 2,000억~4,000억 규모였던 연간 대북지원액수도 지난해 1,160억원으로 급감했다. 무엇보다 남북 경협의 아이콘인 개성공단이 존폐 기로에 놓인 것은 6ㆍ15선언의 현실을 말해 준다.
북한이 6ㆍ15선언 불이행의 책임을 일방적으로 남한에 돌리고 억지 주장을 편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올해부터는 남한 당국도 네 탓 공방에 가세, 6ㆍ15선언의 미래가 더 어두워졌다. 남북 간 대화와 협력의 주무 부처였던 통일부는 14일 얼굴을 바꿔 "6ㆍ15선언을 지키지 않는 것은 북한이다.
남북 간 협력을 차단하고 사회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며 북한을 비판했다. 북한 언론 매체들도 15일 지지 않고 남한의 반정부 투쟁을 선동했다. 남북이 소모적 신경전에 열을 올리는 동안 6ㆍ15선언 1항에 적시된 '우리민족끼리'의 정신은 급속도로 퇴색하고 있다. 이것이 6ㆍ15 9주년을 맞은 지금 남북 관계의 현주소다.
최문선 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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