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에 겨워
거품 물까 봐
지쳐 잠들까 봐
때까치며 지빠귀 혹여 알 품지 않을까 봐
뻐꾸기 운다
남의 둥지에 알을 낳은 뻐꾸기가
할 일은 할 수 있는 일은
울음으로 뉘우치는 일
멀리서 울음소리로 알을 품는 일
뻐꾸기 운다
젊은 어머니 기다리다
제가 싼 노란 똥 먹는 어린 세 살
마당은 늘 비어 있고
여름이란 여름은 온통 초록을 향해
눈멀어 있던 날들
광목천에 묶여 있는 연한 세 살
뻐꾸기 울음에 쪼여 귓바퀴가
발갛게 문드러지던 대낮들
그곳 때까치 집, 지빠귀 집
뻐꾸기가 떨어뜨려놓고 간 아들 하나
알에서 나와 운다
뻐꾸기 운다
● 중년으로 넘어가는 한 인간이 유년을 추억한다. 유년 속에 들어있는 존재가 형성되던 결정적인 순간을 향한 추억. 유유한 산책자 시인 이문재의 유년을 들여다 본다.
여름. 어머니는 일을 하러 나가야 하기에 아들을 광목천에 묶어 두었는지, 세 살 난 아들은 '제가 싼 노란 똥'을 먹으며 뻐꾸기가 우는 소리를 듣는다. 뻐꾸기는 제 알을 남의 둥지에 낳는 새. 알은 다른 어미 새에게 맡겨진다.
여름과 여름 새들의 울음소리 속에서 징하게 고독했던 세 살의 아이. 그리고 문득, 그 아이는 자신이 뻐꾸기였다는 걸 생각한다. 징한 유년의 한 풍경이 그려내는 존재 형성의 이 지독한 순간!, 장년으로 들어가면서 넘어가면서 유년을 떠올리는 도시 속의 한 남자, 그의 삶도 쉽지는 않나보다. 마치 '뻐꾸기 울음에 쪼여 귓바퀴가 발갛게 문드러지던' 것처럼 그렇게 삶의 한복판을 관통하고 있나보다.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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