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일이 거의 없는 타악기가 주인공이 되어 열연을 펼쳤다. 13일 저녁 세종체임버홀에서 열린 서울시향의 타악기 실내악은 타악기의 화려한 비상을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곡과 감탄할 만한 연주로 관객을 열광하게 만들었다. 타악기 앙상블의 현대음악 연주라는 진귀한 성찬에 눈과 귀가 모두 즐거웠다.
서울시향의 타악기 주자 에드워드 최, 아드리앙 페뤼숑, 라울 베르가라, 김문홍, 김미연이 총출동한 이 공연에는 50종이 넘는 크고 작은 타악기가 등장해 무대를 꽉 채웠다. 다양한 소리와 리듬을 맘껏 구사하며 맹활약하는 타악기를 보는 것은 신기하면서도 유쾌했다.
첫 곡인 에드가 바레즈의 '이온화'(Ionization)는 멜로디 없이 리듬과 음색을 복잡하고 정밀하게 엮은 작품. 본래 13명이 연주하는 곡이지만, 객원을 포함해 6명이 연주했다. 그 바람에 연주자들은 몹시 바빴지만, 타악기 앙상블의 진경을 펼쳐보였다.
나이즐 웨스틀레이크의 '자기중심적 강의'는 서로 다른 리듬이 동시에 교차하는 복잡한 구조 속에 아프리카적 색채를 담은 곡. 네 명이 두 대의 마림바를 분주히 오가며 역동적이고 흥겨운 연주를 들려줬다.
이날 연주곡 중 가장 실험적인 작품은 존 케이지의 '크레도 인 Us'(Credo in Us). 피아노(연주 임수연)와 타악기 외에 깡통과 전기 부저 초인종, 라디오 소음과 클래식 음반 사운드가 와글다글 어울리는 곡이다.
베토벤 교향곡 '운명'의 엄숙하고 장대한 주제가 개그맨들의 수다, 뉴스, 광고방송, 귀에 익은 댄스곡과 가요 등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틈틈이 출몰했다.
피아노는 아주 잠깐 재즈풍의 선율을 흥얼거리기도 했지만 주로 쾅쾅 두드리는 소리로 가세했다. 일상 소음의 뒤죽박죽 모자이크처럼 보이는 이 곡으로 연주자들은 유쾌한 만화경을 연출했다.
2부에서는 특히 팀파니와 마림바가 두드러졌다. 아드리앙 페뤼숑의 아버지인 에티엔 페뤼숑이 작곡한 '도고라풍의 5개의 춤곡'은 팀파니와 첼로가 팽팽한 균형을 이루며 대화를 주고받는 2중주곡이고, 아베 게이코의 '웨이브'는 독주 마림바와 4명의 타악 주자를 위한 작은 협주곡이다.
각각 팀파니와 마림바에 고도의 집중력과 고난도의 비르투오소적인 기교를 요구하는 곡이다.
첼리스트 이정란과 함께 '도고라…'를 연주한 페뤼숑, '웨이브'의 마림바 독주자 김미연이 보여준 강렬한 에너지와 표현의 극한을 어려움 없이 넘나드는 솜씨는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페뤼숑의 팀파니 연주는 청중을 꼼짝못하게 사로잡았고, 김미연의 마림바는 솜털처럼 부드러운 소리부터 심박 수를 마구 끌어올리는 박진감 넘치는 사운드까지 변신을 거듭하며 눈부시게 활약했다.
'웨이브'는 다이코(大鼓ㆍ일본의 전통 대형 북) 연주법과 기합 소리, 발 구르기와 박수 치기가 들어가 극적인 효과를 배가하는 곡이어서 청중을 더욱 흥분시켰다. 타악기의 찬란한 향연에 연주자도 청중도 뿌듯한 공연이었다.
오미환 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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