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조건부 인정하겠다고 밝히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간 평화 협상은 새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네타냐후의 발언은 기존 입장에서 전혀 바뀐 바 없는, 말장난에 불과하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14일 텔아비브 바른 일란 대학에서의 연설에서 ▦팔레스타인 탈무장 ▦이란, 헤즈볼라 등 적대 세력과 관계 종식 ▦이스라엘을 유대인 국가로 인정할 것 등 조건을 갖출 경우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외견상 미국 등 국제사회가 주장해 온 '2국가 해법'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때문에 미국은 이를, 이스라엘에 팔레스타인 주권 인정을 촉구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이집트 카이로대 연설에 대한 이스라엘의 호응으로 해석했다. 로버트 깁스 백악관 대변인은 "오바마 대통령은 '중요한 진일보'라 평가하며 환영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 태도변화로 보기 어렵다는 해석도 많다. 네타냐후의 이번 제안이 팔레스타인에 제한적 주권 부여를 주장하는 이전 정책과 판박이라는 시각에서다. 뉴욕타임스(NYT) 역시 15일 "네타냐후의 이전 언급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일축했다.
특히 연설에서 팔레스타인의 핵심 요구 사항은 모두 배제됐다. 네타냐후는 "난민 문제는 이스라엘 국경 밖에서 해결해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이렇게 될 경우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이웃 나라를 떠도는 팔레스타인 난민은 이스라엘로 돌아갈 권리를 잃는다. 또 예루살렘의 분할에도 거부 입장을 밝혔다. 팔레스타인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당시 이스라엘에 점령된 동예루살렘의 반환을 주장해왔다.
아울러 영토 반환 방식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과거 팔레스타인의 땅이었던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에는 현재 각각 30만명, 18만명의 이스라엘인이 정착해 살고있다. 이 문제는 2007년 애나폴리스 중동평화회담에 따른 협상 당시에도 민감했다. 당시 서안지역 98.1%를 넘겨주겠다는 이스라엘측 주장과 100% 반환을 요구한 팔레스타인측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 협상은 결국 물거품이 됐다.
AP통신은 "네타냐후의 조건을 팔레스타인이 받아들일 리 없다"고 분석했다. 팔레스타인 온건파를 대표하는 마무드 압바스 자치정부 수반측은 "팔레스타인, 아랍, 미국 등이 보여준 도전과 노력을 마비시키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극우성향의 리쿠드당 출신인 네타냐후로서는, 형식적이나마 2국가 해법을 수용한 자체가 나름의 도전이다. 우파의 지지를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네타냐후 총리의 정책 담당 보좌관인 론 데르메르는 NYT에 "팔레스타인 국가라는 개념을 받아들임으로써 네타냐후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우익의 산실로 불리는 바른 일란 대학에서의 연설 당시 청중들은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고, 친미 정책에 반대하는 강경 인사들은 행사장 밖에서 반대 시위를 벌였다.
네타냐후가 안팎의 회의적인 반응으로 좌초될 것을 뻔히 예상하고 이번 제안을 내놓았는지, 아니면 근본적 태도 선회를 위한 첫 걸음으로 제안을 내놓았는지는 향후 그의 행보를 통해 가려질 것이다.
최지향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