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철'이란 북한학자가 있다. 북한사회과학원 박사라는 그는 북한의 대외정책에 관한 해외언론 기고를 거의 도맡는다. 실제 정체는 모호하나 북한의 '비공식 대변인'으로 불린다. 글 내용은 물론 선전적 주장을 뒷받침하지만 서방 언론과 전문가를 주로 인용, 짐짓 객관적 논평을 흉내낸다.
생존 위한 '북미 대결'이 본질
그는 지난달 홍콩의 에 '김정일 플랜 B로 전환'이라는 글을 썼다. 김정일은 지난 3월, 10여년 이상 북미 관계정상화와 비핵화를 추구했으나 결실이 없는 '플랜 A'에 대신해 '플랜 B'로 전환하기로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강성대국을 위한 역사적 분수령인 이 결단은 클린턴ㆍ부시 행정부 16년과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결과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김정일의 플랜 A는 1994년 제네바 합의를 비롯해 모든 북미 또는 6자 핵 합의의 동력이다. 그러나 미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오바마 행정부도 요란한 서곡과 달리 적대정책을 바꾸지 않았다. 여기서 김정일은 미국과 어떤 협상도 쓸모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에 따라 플랜 B는 대미 화해를 뒤로 미루고, 완전한 핵무기 국가를 지향한다. 6자 회담 거부와 2차 핵실험은 플랜 B 결단이 돌이킬 수 없음을 명백히 알린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이어 11일 '핵 전쟁이 김정일의 게임 플랜' 이라는 글에서 북한이 지구적 핵 공격력을 개발한 주된 목적은 미국의 침략을 억제하고, 북미 전쟁시 미ㆍ일의 목표를 타격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북한의 핵 억지력이 없었다면 미국의 제2 이라크 전쟁으로 한ㆍ중의 번성하는 경제와 일본은 초토화됐을 것"이라며 "한ㆍ중ㆍ일도 내심 북한 핵 능력에 감사할 것"이라고 떠들었다.
언뜻 황당한 주장을 굳이 길게 소개한 것은 우리의 대북정책에 대한 상투적 비판이 없는 것이 두드러진 때문이다. 그 속내를 짐작하기 어렵지만, 13일 북한 외무성이 유엔 안보리 제재에 맞서 우라늄농축 착수 등을 선언한 성명에서 스스로 답했다고 볼만하다. 북한이 가장 무게를 싣는 외무성 성명은 "오늘의 대결은 본질에서 공화국의 자주권과 존엄에 관한 조미(북미) 대결"이라고 선언했다.
이런 글과 성명은 남쪽보다 국제사회를 향한 것인 만큼, 이를테면 '대치 전선'을 단순화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물론 예전처럼 '남쪽의 반미ㆍ친북 세력을 선동하는 술책'으로 규정할 수도 있겠다. 얼마 전 자결한 친북 원로가 "북핵과 미사일은 세계 최강 아메리카와 버티는 정신력의 상징"이라고 칭송한 것과 같은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그러나 잡다한 고려를 넘어서면, 우여곡절을 거듭하는 북핵 문제의 본질은 역시 저들 말대로 '북미 대결'임을 확인하게 한다. 북한의 잇단 도발적 언행도 김명철이 강조하듯, 미숙한 한미 두 나라 대통령을 시험하는 협상용이 아니라 그들 나름대로 '2012년 강성대국' 목표를 향한 일관된 행보이다. 좀 더 객관적 진단으로는 김정일의 병으로 체제의 기둥이 흔들리는 권력 이양기에 직면, 체제의 생존을 확보하기 위한 몸부림이다.
독일 언론은 이를 빗대 "핵은 김정일의 생명보험"이라고 논평했다. 부시행정부의 6자 회담 차석대표를 지낸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김정일이 죽기 전 아들을 위해 서두르는 듯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당장 핵 폐기 등을 협상하기보다 핵 확산을 봉쇄하면서 기다리는 게 낫다"고 권고했다.
왜곡된 '전쟁 위기' 과장
늘 지적하지만, 우리의 대북정책과 남북관계는 북핵 대치와 위기의 본질 또는 핵심이 아니다. 이걸 억지로 왜곡해 지난 정부와 지금 정부의 대북정책의 옳고 그름을 다투는 것은 무지하거나 위선적이다. 차라리 친북 원로의 강파른 반미 논리가 솔직하다. 저마다 다른 생각으로 '전쟁 위기'를 과장하는 우리사회 보수와 진보가 김명철 정도의 '객관성'이나마 본받는다면 국민이 훨씬 편안해 질 것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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