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시국선언 등을 통해 불거져 나온 '민주주의 후퇴' 논란의 한복판에 강희락 경찰청장이 서 있다. '서울광장 차벽'으로 상징되는 경찰의 집회 원천봉쇄가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고, 시위대의 폭력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강 청장은 취임 100일(16일)을 맞아 본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불법 시위에 엄정 대응 법 질서를 확립하겠다"면서도 "명백한 위험이 없는 한 서울광장에 차벽을 설치하지 않을 것"이라며 유연한 대응으로의 변화를 시사했다.
용산 참사 후 39일간의 지휘부 공백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 뒤에 취임한 그는 초기부터 터진 각종 경찰 비리사건과 관련, "욕 먹더라도 (비리를) 내가 다 털고 가겠다"고 말했다.
-논란이 컸던 서울광장 차벽부터 얘기해보자. 경찰이 차벽을 철수한 뒤 치러진 6ㆍ10 국민대회가 큰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차벽 설치가 결과적으로 과잉 대응이 아니었나.
"원칙적으로 차벽 설치를 안 하는 게 맞다. 나도 차벽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막을 때는 다 근거가 있었다. 폭력시위 위험이 낮아졌다고 판단해 차벽을 철수했다. (6ㆍ10 대회를) 잘 대처했다고 생각하는데, 앞으로도 유연하게 대응해나갈 것이다."
-집회를 금지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비판이 많다.
"지난해 집회 금지는 전체의 0.24%에 그쳤다. 이 정도가 남발인가. 평화적 집회는 최대한 보장하되 불법시위는 엄정하게 대응, 법 질서를 확립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최근 서울광장 등 도심 집회가 모조리 금지됐다. 소수의 폭력 때문에 다수의 집회 자유권이 침해되는 것 아닌가.
"민주사회에서 광장의 역할에 나도 동의하지만, 법과 규칙도 존중해야 한다. 특히 집회 주최측의 통제가 필요한데 주최측은 집회 후 무책임하게 떠나고, 남은 참가자들이 도로를 점거하는 행위가 일상화됐다. 주최 측이 폭력시위 안 한다고 보장하고 실천한다면 경찰이 막을 이유가 없다. 6ㆍ10대회 때도 6,000여명이 거리로 나와 태평로가 5~6시간 막혔다."
-경찰의 과잉 진압이나 원천봉쇄가 오히려 폭력을 유발한다는 지적이 있다. 6ㆍ10대회도 차벽으로 원천봉쇄하지 않아, 큰 충돌을 피한 것이 아닌가.
"앞으로 명백한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 한 서울광장에 차벽을 설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평화적인 집회는 당연히 허가하고 폭력집회는 현장에서 막아야 한다. 지금까지 경찰의 법 집행 일관성이 부족한 면도 있었다. 앞으로 일관된 법 집행을 유지할 것이다."
-취임 직후부터 각종 비리사건이 잇따랐는데, 대책은 있나.
"단호하게 경찰을 쇄신하겠다는 생각이다. 욕을 먹더라도 내가 털고 가겠다. 우선 우리 조직에 있어서는 안될 사람을 솎아내고 있다. 취임 이후 131명의 비리 경찰관을 적발하고 총경 4명을 포함해 78명을 퇴출시켰다. 특히 244개 일선 서장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과거 총경 달고 서장 나가면 지역 기관장 대우 받고 지역 유지들과 유착하기도 했는데, 앞으로는 제대로 못하면 바로 직위해제 한다. 7월 정기인사 때 3~4개월짜리 서장 나올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경위에 대한 수사가 부실했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사고 직후 청와대 경호처가 사망 경위를 밝히려고 하는 기류가 있었다. 안 된다, 경찰이 수사해야 한다고 했다. 오히려 경호처도 수사대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장에 있던 사람이 아니면 알 수가 없는 사건이라 초기엔 경호관의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완벽하게 수사해서 결과를 공개했어야 했는데, 서둘러 발표하다 혼선이 있었다."
-평소 주장하던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전향적으로 추진할 의사가 있는가.
"민주사회에서 검찰이 기소권과 수사권을 함께 갖는 것이 국민의 인권보호와 편익 측면에서 바람직한 지 봐야 한다. 수사권 독립은 사건 98%를 경찰이 처리하는 상황을 현실화해 달라는 것이다. 그것이 국민 편익에 부합된다는 뜻이다. 그 전제로 '경찰에서 조사했더니 명쾌하다'는 국민적 신뢰를 얻어야 한다."
-대형 사건들에 묻혀 정작 민생치안에는 소홀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폭력, 강도, 조직폭력 등에 대한 특별 단속을 강도 높게 진행하고 있다. 국민들이 치안 서비스를 피부를 느낄 수 있게 도보, 자전거, 경차를 활용한 골목길 순찰을 강화할 것이다."
-취임 이후 강조해온 '정성을 다하는 경찰'의 모습은 무엇인가.
"경찰은 잠 못자고 열심히 일하고도 국민에게 욕을 먹었다. 나도 가슴에 응어리가 졌다. 욕 먹지 않는 경찰을 만들겠다는 것이 내 목표다. 과거 소액 도둑 신고 들어오면 몇 푼 되지도 않는데 신고하냐며 무시하고 문 단속이나 잘하라는 식으로 대응한 일도 있었다. 이래서 국민에게 사랑 못 받고 욕 먹는 것이다. 내 일, 내 가족 衢낮?정성을 다해야 한다. 자발적으로 피해자에게 두 번, 세 번 찾아가서 이야기를 듣는, 그런 자세를 갖춰야 한다."
-앞으로 중점을 두고 추진할 과제는 무엇인가.
"사랑과 신뢰를 받는 경찰이 되려면 일할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일례로 불심검문의 범위와 방법에 대한 법 규정이 없는데, 경찰관 직무집행법을 개정해야 한다. 지방청 내 보육시설 확충 등 복지에도 힘쓰고, 일선 직원들과의 스킨십도 더욱 넓혀가겠다. 그동안 25개 관서를 방문, 1만 명 이상의 경찰관을 만났다. 이동 경로만도 6,000㎞가 넘는다. 244개 경찰서 다 다닐 생각이다. 직원 중 10%, 20%라도 내 말에 공감한다면 무척 기쁜 일이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송태희 기자 bigsmil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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