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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걸어도 걸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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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걸어도 걸어도'

입력
2009.06.15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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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돌아갈 수 있는 곳, 그러나 늘 불편함과 후회를 주는 곳, 또한 누구에게나 익숙한 일상이어서 도리어 표현이 어려운 곳. 가족이다. 부모와 자식, 부부, 형제들이 느낄 수 있는 그 미묘한 감정과 관계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섬세하게 포착해냈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의 진가는 그 보편적인 현실감이다.

오랜만에 집을 찾은 아들 딸 손주들로 떠들썩한 시골 부모님 집안의 풍경은 그저 여느 한가로운 여름날처럼 보인다. 쉴 새 없이 음식을 만들고 챙겨먹이는 할머니, 무뚝뚝한 할아버지, 수다스러운 딸, 아들이 죽은 후 재혼한 다소 불편한 며느리 등.

그러나 10년 전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고 죽은 큰 아들의 제사를 지내는 그 이틀을 들여다보면, 저건 바로 나의 가족 중 누군가의 모습이라고 보는 이에게 투영될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존경받는 의사였던 아버지는 이웃에 응급환자가 생겨도 "빨리 병원을 가라"는 조언밖에는 할 수 없을 만큼 연로했다. 하는 일이 없어도 작업실 책상자리를 고집하다가 뜬금없이 딸에게 불평을 던진다. "내가 이 집 세울 때 얼마나 고생했는데, 너는 왜 항상 애들한테 이 집을 '할머니집'이라고 하냐!"

형이 죽은 뒤 대신 의사로 키우려던 아버지의 꿈을 저버리고 미술복원가가 된 둘째 아들은 결코 자신이 실직 상태라는 것을 밝힐 수 없다.

"아들 차 타고 쇼핑 가는 게 소원"이라던 어머니 말에 "꼭 그렇게 하겠다"고 해놓고도 결국 돌아가실 때까지 들어드리지 못했다. 이 대목은 여전히 운전을 할 줄 모르는 고레에다 감독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했던 헛된 약속이었다고 한다.

고레에다 감독은 "영화 속 어머니의 대사 대부분이 실제 내 어머니가 했던 말들"이라고 말한다. 그가 이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수년 전 어머니의 죽음이었던 것처럼 '걸어도 걸어도'에는 뒤늦게 불현듯 깨닫는 가족에 대한 후회로 가득 차 있다.

어머니를 모시고 운전하는 일이나 욕실을 고치는 일 등 '있을 때 하지 못한', 한 발씩 늦는 우리의 삶에 대한 회한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18일 개봉, 전체 관람가.

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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