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에서 피랍됐던 한국인 여성 엄영선(34)씨가 15일 밤 살해된 채 발견되자 외교통상부도 충격에 휩싸였다. 지난 3월 한국인 관광객 4명이 예멘에서 자살 폭탄 테러로 희생된 데 이어 같은 나라에서 또 한국인 피랍 살해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그 충격은 더 컸다.
지난 12일 오후 예멘 북부 사다에서 국제의료자원봉사 단체 소속 외국인 8명과 함께 실종됐던 엄씨 사망설이 퍼진 15일 저녁, 외교부는 현지와 긴급 통신을 하며 상황을 확인하느라 긴박했다. 외신에서 '7명 시신 발견' '독일인 3명의 시신 발견' 등 엇갈린 정보가 보도되면서 혼란은 거듭됐다.
오후 8시가 넘어 외교부는 주예멘 한국대사관을 통해 "엄씨 일행이 실종됐던 사다 인근에서 현지 양치기에 의해 신원 미상의 시신 3구가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이어 예멘 당국으로부터 "시신 3구는 모두 독일인으로 보이고 한국인은 포함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외교부는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외교부 당국자는 "현지 공관과 실시간으로 연락하며 현지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며 "사다가 예멘에서도 외딴 지역이고 통신 상황도 원활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오후 10시가 넘어 사다 현지에 체류 중인 한국인 동료 의사가 예멘 대사관측에 "시신 3구 가운데 한 구의 옷과 체구를 볼 때 엄씨가 맞는 것 같다"고 전했고, 서울 본부에 이런 사실이 전해지면서 외교부는 고개를 떨궜다. 여기에다 AP 통신이 밤 10시43분 "9명 전원이 살해됐다"고 보도하자 분위기는 더욱 참담해졌다.
정부는 일단 예멘대사관을 통해 엄씨 사망 여부를 최종 확인하고 시신을 수습하는 데 주력키로 했다. 또 서울에서 엄씨 가족과 함께 현지에 긴급 대책반을 보낼 준비도 하고 있다.
정부는 이에 앞서 엄씨가 실종된 사실이 한국에 처음 알려진 지난 13일 밤 외교부에 사고대책본부를, 주예멘 대사관에 현지 대책반을 구성했다. 14일 낮에는 외교부 재외동포영사국장 주재로 관계기관 대책회의도 가졌다. 주예멘 대사관은 엄씨와 함께 실종된 일행의 소속국인 독일, 영국 등의 현지 대사관과 함께 예멘 당국과 계속 접촉해 피랍자들의 소재 파악을 위해 노력했다.
예멘에는 현재 사다 지역 8명을 포함해 한국인 170여명이 머무르고 있다. 예멘은 외교부의 여행경보 3단계 여행제한 지역이기는 하나, 한국인이 완전히 입국할 수 없는 나라는 아니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