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 지음/문학동네 발행ㆍ360쪽ㆍ1만1,000원
"그에게 있어 지도란 저울과 같다. 사람살이의 저울이요 세상살이의 균형추요 생사갈림의 나침반이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1866?)의 삶이 소설로 복원됐다. 박범신(63)씨의 장편소설 <고산자> 는 부정확하고 미심쩍은 설화와 민담 속에 흐릿하게 부유하고 있던 김정호의 일생을 생동감 있게 되살려 낸다. 고산자>
"역사가 그를 유기했다"는 작가 박씨의 단언처럼 이 외로운 지도제작자의 삶을 추적하는 것은 역사의 빈 노트를 채우는 것과 다름없는 지난한 작업. '김정호는 고산자(古山子)라 하였는데 본래 기교한 재예가 있고, 특히 지도학에 깊은 취미가 있었다.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는데 자신이 그림을 그리고 새겨 인쇄해 세상에 펴냈다. 그 상세하고 정밀한 것은 고금에 그 짝을 찾을 수 없다'는 유재건의 '이향견문록'(1862) 정도가 김정호에 관한 가장 친절한 기록이다.
태어난 해가 1803년인지 1804년인지, 출생지가 황해도 토산인지 봉산인지, 결혼은 했는지 안했는지 등 기본적인 인물정보조차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김정호의 흔적은 대동여지도를 만들 때 백두산을 열 번이나 찾았다, 혹은 병인양요 때 첩자로 몰려 옥사했다는 등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설화들 속에서만 추적할 수 있다.
박씨가 문학적 상상력을 길라잡이로 그 설화의 숲속을 헤치며 건져낸 김정호는 '시대와의 불화'를 감내한 인물이다. 박씨는 김정호가 마치 구도자처럼 지도 만들기에 평생을 투신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지배층에 대한 저항의식으로 본다. 당시 지배권력이 행상이나 행수 등 지도가 목숨줄이나 다름없던 민중들이 제작해 널리 퍼졌던 정밀한 지도를 불온한 시각으로 경계했으며, 자신들이 보유한 지도는 되도록 감추고 공개하지 않았던 점에 박씨는 주목한다. 그는 김정호의 입을 빌어 "마땅히 지도는 나라의 것이기에 앞서 백성의 것이라야 한다"며 정보를 독점해 민중을 통제하려 했던 지배층을 직설적으로 비판한다.
반면 민중들의 정보 개방성과 소통 능력은 지배계층의 그것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나라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도를 비변사 비밀곳간에 한사코 감춰두고 있을 때에도 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 스스로 지도를 그려 동행자와 기꺼이 나눠 갖는다. 먹고 살기 위해 길을 따라 흐르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간직된 지도는 관아가 갖고 있을 군현도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섬세하고 정확하다"고 표현된다.
홍경래 난의 진압군으로 나섰다가 오류로 가득한 관아의 지도 때문에 노상에서 횡사한 김정호 아버지 이야기, 지도용 판목을 구하려는 김정호를 불법 벌채를 구실로 권문세족이 무력화시키는 가공의 에피소드 등이 추가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지도 제작이라는 김정호의 업과 인생을 유비(類比)한 구절들도 소설을 빛낸다. "세상살이도 사람과 사람, 떼와 떼의 맥을 짚어내지 못하면 죽을 뿐이고, 산하를 치세함에 있어서도 산과 물, 물과 물의 이어짐을 잘 짚어내지 못하면 치세의 죽음 뿐이다." "바람은 어디에서 어떻게 생겨 어디로 흐르고 어디에서 소멸하는 것일까. 목숨 가진 것들의 지도를 그리는 것은 바람의 지도를 그리는 것과 매한가지일 것이다."
1973년 등단 이후 처음으로 역사소설을 썼다는 박씨는 "고산자는 통찰력 있는 인문학자이자 뛰어난 과학자, 재능있는 예술가였다"며 "그에 관한 소설을 쓰면서 당대 현실에 어떻게 응전하며 관계해야 하는지를 많이 배웠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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