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는 언뜻 보기에 뚜렷한 사건 없이 서서히 악화되다가, 마침내 완전히 단절되고 무력충돌이 일어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꼼꼼히 따져보면 원인이 되는 말과 행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화를 통해 갈등을 극복하고 남북관계를 적극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의지의 부족이 가장 문제다. 이제 남북관계는, 그리고 한반도 정세는 본격적인 힘겨루기 상태에 들어갔다. 6ㆍ15시대라는 말이 까마득한 옛날 일이 되어버렸다.
남북 단절 속의 3차 북핵위기
미국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북ㆍ미 관계 개선을 통한 한반도 정세의 안정과 남북관계의 개선을 기대했던 전망은 북한의 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으로 당분간 실현 기미가 없어 보인다. 더욱이 북한의 도발적 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이 강경할수록, 북한의 대응도 더욱 강경해질 것이다. 북한의 대남공세는 이미 군사적 충동을 예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북ㆍ미 사이에는 교착 상태를 벗어날 기회를 어느 한 쪽이 먼저 만들려 하지 않는다. 2차 북핵위기가 해소단계에 완전히 접어들기도 전에, 한반도에서 3차 북핵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이처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언제 어디서 무력충돌이 일어날지 모르는데도, 국민은 심각한 위기감을 느끼는 것 같지 않다. 아마도 지난 20여 년 동안 대화를 통한 관계 개선이 가져다 준 안정감이 국민들의 의식 속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대북 포용정책을 거부하고 6ㆍ15공동선언과 10ㆍ4선언의 적극적 실천을 유보하고 있는 현 정부조차 군사적 방어 태세의 강화만으로 현 상황을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지난 시기 남북관계 발전의 평화적 효과를 과신하는 것 같다.
위기의 순간일수록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지혜를 얻어야 한다. 남북기본합의서(1991.12)에서부터 6ㆍ15공동선언(2000.6)에 이르기까지, 더 넓혀서 바라보면 7ㆍ4공동성명(1972.7)에서부터 10ㆍ4선언(2007.10)에 이르기까지, 남북 사이에 이루어진 여러 합의의 핵심은 상호 인정과 이해 증진, 긴장 완화와 무력 거부, 교류ㆍ협력과 관계 발전이다.
되돌아보면, 남북 당국은 분단체제 하에서 군비증강을 통한 체제 안정을 기본적으로 추구하면서도, 대립과 대결이 결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궁극적으로 민족의 이익과 번영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바로 이 때문에 긴장과 충돌 속에서도 남북대화를 했고, 마침내 남북 정상 사이에 평화통일을 위한 선언이 있었다. 사실 우리에게 대북 포용정책은 유일하게 현실적인 정책이었으며, 6ㆍ15공동선언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대북 포용정책과 남북합의문들의 소극적 측면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 크게 볼 때, 7ㆍ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6ㆍ15공동선언, 10ㆍ4선언 모두 한반도 정세나 국제질서가 불안정하거나 급변하는 상황에서 남한 정부가 민족의 평화와 통일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려고 했기 때문에 실현될 수 있었다.
바로 이러한 적극성과 주체의식, 합의문에 담겨 있는 평화의 정신이 한반도에 안정을 가져다 주었으며, 우리의 삶을 전쟁의 공포로부터 해방시켰다. 1990년대 말 당시의 북ㆍ미 갈등을 해소하고 2000년대 초 남북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발전시키는 데에 기여한 6ㆍ15공동선언은 이 모든 노력의 정점이었다. 그렇기에 감히 6ㆍ15정신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위기 돌파할 해결책 모색하길
현재 우리 사회는 의식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특히 이러한 괴리는 남북관계에서 위험할 정도로 뚜렷하다. 남북관계 단절과 무력충돌의 위험성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국민은 현재의 위기를 직시하고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강력하게 요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정부는 6ㆍ15정신으로 되돌아가는 것만이 위기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임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우리는 다시 남북대결의 시대로, 전쟁의 공포 속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박순성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ㆍ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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