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 영향으로 산딸기 철도 한두 달 앞당겨진 모양이다. 어쩌면 산딸기도 하우스 재배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산딸기라 이름 붙여야 하나. 슈퍼마켓 매대에 잔뜩 쌓인 산딸기 앞에서 몇 번이나 산딸기 상자를 들었다 놓았다. 얼마 전 소설가 공선옥의 '행복한 만찬'을 읽다 몇 번이나 짜르르 침이 고였다. 산딸기를 그의 고장에서는 때왈이라 부른다 했다. 푸른 숲속 핏방울처럼 동글동글 맺힌 산딸기를 발견한 아이들은 행여 누군가에게 들킬까 함성도 못 지른다.
산딸기를 따다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거나 산딸기 밭에 들어가 영영 나오지 못한 아이들의 이야기가 있었던 걸 보면 산딸기에 불처럼 이는 욕망과 그 욕망에 대한 죄의식을 아이들도 경계했던 걸 거다. 알이 통통한 걸로 기껏 집어들었다가 슬그머니 도로 내려논 건 평생 두어 번 맛본 산딸기가 배리착지근하니 별 맛 없었던 기억 때문이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가 공선옥 선배와 음식에 대해 공유할 것은 별로 없지 싶었다.
내게 추억의 음식이란 대개 불량식품이거나 공장에서 만들어낸 과자나 음료수들이었다. 불현듯 그리워지는 맛은 쑥이나 산딸기 맛이 아니라 인공적인 써니텐 포도맛이다. 카스텔라를 한 입 가득 물고 마시는 미지근한 사이다의 맛. 소풍의 맛. 그래도 둘 다 공감하는 맛이 있다. 타지에서 마시는 소주 맛이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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