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둑계를 이끄는 양대 단체인 대한바둑협회(회장 조건호)와 한국기원(이사장 허동수)이 분리된 지 4년만에 다시 합친다. 두 단체는 지난 달 정식으로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 이 달 초 1차 회의에 이어 19일에 다시 2차 회의를 갖고 통합 원칙을 대강 마무리할 예정이어서 통합 추진 작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통합추진위원회는 김기춘 변호사(전 법무장관)를 위원장으로 하고 한국기원측에서 이정무 상임이사(한라대 총장), 조상호 상임이사(나남출판 대표) 조훈현 상임이사(프로기사) 유창혁 상임이사(프로기사) 한상렬 사무총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밖에 조건호 회장, 이재윤 부회장, 박창규 경기도바둑협회부회장, 이민우 대한체육회상벌위원, 강준열 대한바둑협회전무 등 대한바둑협회측 인사5명도 참여한다.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는 원래 한 뿌리다. 지난 60여년간 한국 바둑계는 한국기원이 프로와 아마추어 부문을 모두 관장해 왔다. 그러다 2000년대 초 바둑을 체육으로 전환키로 결정, 대한체육회 산하 경기 단체의 가입 요건을 맞추기 위해 2005년 11월 사단법인 형태인 대한바둑협회를 창립하고 한국기원의 지방 조직과 아마추어 부문을 넘겨 주었다.
대한바둑협회는 그 후 대한체육회 인정 단체와 준가맹 단체를 거쳐 올 2월 정가맹 단체가 됐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막상 대한바둑협회가 대한체육회 정가맹 단체로 되고 본격적으로 업무를 추진하게 되자 단ㆍ급증 발급이나 정부 보조금 배분 등 이런 저런 이유로 한국기원과 마찰을 빚기 시작했다. 해외에서 어느 단체가 한국 바둑계를 대표하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도 티격태격했다.
중국 일본 등 바둑 강국에서는 아직 프로와 아마를 분리하지 않고 있어 누가 이들과 업무파트너가 되느냐를 놓고 혼선이 빚어졌다. 예를 들어 매년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를 개최하는 일본 주도의 세계바둑연맹(IGF)에 한국에서는 대한바둑협회가 아니라 한국기원이 회원으로 돼 있다.
그래서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에 출전할 한국 대표 선발전은 대한바둑협회가 주관하지만 정작 선수단 파견 업무는 한국기원이 맡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특히 2010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양측의 갈등이 심화됐다. 원래 아시아 지역에는 최근까지 국제적인 바둑 기구가 없었다. 그러다 대한바둑협회가 창립된 후 조건호 회장이 장차 아시안 게임에 바둑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될 것에 대비, 발빠르게 움직여 아시아 지역 12개국이 참여하는 아시아바둑연맹(AGF)를 창설하고 한국을 회장국으로 추대했다.
한국이 주도하는 아시아 지역 국제 바둑 기구가 만들어진 것이다. 한 가지 아쉬움은 중국과 일본이 자국에 별도의 아마추어 바둑 단체가 없다는 이유로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
그래도 아시아바둑연맹은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를 꾸준히 개최하는 등 나름대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면서 아시안게임에 대비해 왔으나 정작 대회가 가까워 오자 뜻밖의 문제가 생겼다.
중국과 일본이 아시아바둑연맹을 따돌리고 한국기원에 한중일 3국 기원이 별도의 단체를 만들어 아시안게임 바둑종목 관련 업무를 논의하자는 제의를 해 온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기원 실무책임자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대한바둑협회측에서 크게 반발했고 급기야 책임자 인책론이 거론되는 등 험악한 분위기가 빚어졌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같은 갈등 심화가 오히려 통합을 촉진하는 계기가 됐다. 두 단체 대표가 모여 갈등 해소 방안을 논의하던 중 바둑이란 종목의 특성상 프로와 아마의 활동 영역을 딱 부러지게 나누기 어렵기 때문에 분리된 상태로는 원만한 조정이 어려우므로 아예 두 단체가 다시 통합을 하는 게 갈등 해결의 최선책이라는 쪽으로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또한 기왕에 통합을 하려면 더 이상 두 단체 사이가 악화되기 전에 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대한바둑협회 회장이 한국기원 부 이사장을 겸하고 있는 지금이 가장 적기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그래서 두 단체가 분리 4년만에 다시 본격적으로 통합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지금으로선 양측의 이해가 서로 맞아 떨어진다. 대한바둑협회가 아직 규모는 작지만 정규 스포츠 단체라는 강점이 있는 반면 한국기원은 덩치는 크지만 성격이 임의 단체여서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은 물론 전국체전 등 공적인 스포츠 행사 참여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기원으로서는 아마추어와 지방 조직을 대한바둑협회에 이관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수족이 잘린 상황이고 임의 단체라 정부 쪽과 무슨 일을 하거나 공공예산 지원을 따내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또 한국기원은 프로 단체여서 해외 파트너가 중국 일본 정도인데 반해 대한바둑협회는 영어 사용권 국가에 강세를 보이고 있어 통朗?경우 서로 이득이다.
대한바둑협회로서도 별 손해가 없다. 정규 스포츠 단체라는 강점이 있지만 현실적으로 프로 바둑이 현저히 강세를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아마추어 독자적으로는 보급 활동에 어려움이 많다. 현재 재정적 어려움도 큰 문제다.
아직 재정 자립을 못해 한국기원으로부터 연간 2억원 가량의 경상 경비를 지원 받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기원과 통합할 경우 대한체육회 산하 55개 경기 단체 중에서 외형 기준으로 10위권 안팎에 해당하게 돼 신생 경기 단체로서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대외적인 영향력이 크게 신장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까지 마련된 통합 로드 맵에는 앞으로 두어 차례 통합 추진 위원회를 더 열어 통합 절차에 대한 논의를 마친 후 실무 협의를 거쳐 9월까지는 구체적인 통합안을 마련한다고 돼 있다.
연말까지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가 각기 이사회와 대의원회에 보고, 의결을 거친 후 내년 상반기 중 양 단체간 통합 협정서를 체결할 예정이다. 무척 빠른 진행이다.
통합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논의되고 있는 사항은 새로 만들 단체의 명칭과 성격이다. 여러 가지 안이 거론됐지만 대한체육회 산하 경기 단체가 모두 '대한○○협회'라는 명칭을 쓰고 있는 것을 감안, 새 단체의 명칭도 지금처럼 '대한바둑협회'라고 하되 새 단체의 대표를 허동수 한국기원 이사장이 맡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의 성격도 문제다. 현재 대한바둑협회는 사단 법인이고 한국기원은 재단 법인 형태여서 통합을 하려면 어느 한 쪽으로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는 모두 사단 법인 형태이므로 그 쪽으로 통일하면 편하지만, 그 경우 세금 문제 등으로 100억원이 넘는 한국기원 재산을 그대로 유지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재단 법인 형태를 유지하면서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로 들어갈 수 있는 방안 등을 모색하고 있으나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성사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박영철 객원 기자 indra036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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