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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주 두번째 소설집 '얼음의 책' 펴내/ 서사 거부 언어 실험, 의식·감각을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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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주 두번째 소설집 '얼음의 책' 펴내/ 서사 거부 언어 실험, 의식·감각을 깨우다

입력
2009.06.14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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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것, 쓰고 있는 것, 그것만이 중요하죠. 나를 봐요. 이게 나예요. 내가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볼 수 있을까요?"('K에게'에서)

한유주(27)씨의 두번째 소설집 <얼음의 책> (문학과지성사 발행)의 책 앞날개에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찍은 작가의 사진이 실려있다. 소설을 쓰고 있는 자신의 의식을 막다른 골목까지 몰고 가 자신만의 소설미학을 완성하려는 그의 고집과 완강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 신화적 상상력, 인습파괴적인 문장들이 압도적인 첫 작품집 <달로> (2006)로 일약 문단의 '무서운 아이'로 떠오른 한씨는 3년 만에 낸 새 소설집에서 좀더 강력한 언어실험을 시도한다.

"그 원형이 '시'였던 문학에서 왜 '소설'이라는 장르가 갈라져 나왔을까를 고민해왔다"는 한씨의 말은 그 실험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힌트다. 그는 소설의 장르적 관습인 '사건'을 거부한다. 소설을 이야기(서사)로 받아들여온 독자들에게, 이야기의 축을 이루는 '사건'을 지독하게 부정하는 그의 소설의 등장은 역설적으로 하나의 사건이다.

기억의 조작을 통해 대화와 행동의 순서를 뒤바꾸거나 재배치하며 사건을 서술하는 통상적 소설작법은 그의 몸에 맞지 않다. 그는 쓴다. "그저 일어나는 사건들을 끝없이 지연시키고 싶었다… 나는 없는 이야기들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 사건을 이야기하지 않는 것, 아무것도 예기치 않는 것에 대한 욕망을 덧입힌다"('서늘한 여름사냥'에서).

사건이 사라진 소설의 빈 자리에는 소설을 쓰는 소설가의 자의식이 또아리를 틀고있다. 따라서 그의 소설은 자기반영적 소설이자 소설에 관한 소설, 이른바 메타픽션이다.

그처럼 예민한 자의식은 시점을 뒤섞기도 하고, 서술의 진위를 의심하기도 하며, 시제를 뒤흔들기도 하는 극단적인 언어실험으로 육체를 얻는다.

하나의 상황을 묘사하면서도 긍정과 부정의 문장을 반복하는 자기고백적 소설 '허공 0'이나, 승용차로 납치된 소년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1인칭과 3인칭 그리고 신(神)의 시점 사이를 넘나드는 '흑백사진사'등은 그의 실험정신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그 같은 반(反)서사에의 경도라는 점에서 그는 이인성, 정영문, 김태용 등으로 이어지는 국내 소설가들의 계보에 놓여질 만한 작가다. 특히 긍정문과 부정문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의미' 대신 '효과'를 의도하는 문장(문학평론가 김형중)의 운용은 독보적이다. 가령 이런 식이다.

"그가 창문을 열었다. 그가 창문을 열지 않았다. 흰 커튼이 부드럽게 펄럭거렸다. 시간이 흔들린다. 해가 지고 있었다. 그의 눈은 푸른색이었다. 그의 눈은 푸르지 않았다. 그의 눈은 검지 않았다. 아니었다….'('재의 수요일'에서)

홍익대 독문과 재학 시절 습작으로 쓴 단편 '달로'가 문학과사회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혜성처럼 등단한 한씨는 서울대 미학과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현재 논문을 준비하는 중. 자신의 소설처럼 끝없이 회의하는, 회의하는 것까지도 회의했던 18세기 영국의 공리주의자 데이비드 흄에 관한 논문이다.

실험적이고 도발적인 글쓰기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자신의 소설이 현실과 무관한 자폐적인 글쓰기라는 생각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한씨는 "인물이나 사건을 리얼하게 묘사하는 것만이 리얼리즘이 아니고 내 소설은 넓은 의미의 리얼리즘이라 생각한다"며 "사실과 똑같지 않지만 재연과정을 거쳐 잊혀져있던 의식을, 감각을 어떤 방식으로든 계발시키는 것이 내 소설"이라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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